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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목사가 가톨릭 신학자로 개종한 이유

 오하이호 가톨릭 대학 스캇 한 교수의 개종 이야기

 주류 개신교 신학교 교수이며 열렬한 장로교 목사로서 가톨릭교회를 반대하던 스캇 한 교수는 가톨릭의 진리가 성경에 뿌리를 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로마 천주교 신학자로 개종하였습니다.  다음은 그가 기도와 연구를 거듭하면서 국제적인 천주교회 옹호론자가 된 그의 신앙 여정에 대한 체험담을 직접 정리한 것입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과 함께 하게되서 정말 기쁩니다. 저는 어떻게 제가 로마 천주교 신자가 됐고, 어떻게 하느님께서 저와 제 아내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 안에서 역사하셨는지에 대해 나눌 기회가 주어질 때 마다 늘 놀랍고 기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를 떠 올립니다. 예쁜 젊은 여인과 데이트를 하기 위해 가장 나쁜 방법을 사용한 젊은 청년이 있었습니다. 청년은 그 일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용기를 얻는데 수 주가 걸렸고 마침내 그가 데이트를 신청하자 그 여인은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청년은 놀랐지만 기뻤습니다. 토요일 아침이 되자 그는 여러 가지로 준비를 했습니다. 긴 시간 샤워를 하고 무슨 옷을 입을 것인지 결정을 한 후 그녀를 놀래주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래서 약국으로 갔습니다. 

카운터 뒤에 있는 직원에게 1파운드짜리 초컬릿과 2파운드, 3파운드짜리 초컬릿을 각각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 직원은 허리를 굽혀 초컬릿을 꺼낸 다음 “왜 3가지 다른 사이즈의 초컬릿을 사는지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하고 말했습니다. "좋아요” 그는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오늘 밤에 저는 특별한 데이트를 합니다. 아주 예쁜 여자와 데이트를 하는데 만약 그 여자가 데이트 중에 내가 손을 잡는 것을 허락하면 1파운드짜리를 주고 영화 보는 중에 그녀의 어깨를 슬쩍 안았는데 그대로 있으면 2파운드짜리, 그리고 우리가 헤어질 때 키스를 하게 하면 3파운드짜리를 줄 겁니다.” 그러자 그 직원은 “ 이런, 교활한 늙은이 같은 사람, 좋은 시간 보내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그 청년은 잔뜩 긴장을 하고 아가씨 집앞에 30 분이나 일찍 갔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문에 나오더니 “지금 우리가 막 저녁식사를 하려고 했었어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제가 같이 있어도 돼요?” 하고 말했고 “좋아요. 괜찮을 거예요” 하고 청년을 안내했습니다. 청년은 식탁에 앉자 “제가 식사 기도해도 되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물론이지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 청년은 기도를 5분도 넘는 10분 동안이나 하고 마침내 아멘! 했습니다. 그런 후 주위를 둘러보며 약간 어색해 했으며 사람들은 식사를 시작했으나 이미 음식은 차갑게 식어 있었습니다. 헤어질 때 그 아가씨는 그 청년에게 “ 당신이 그렇게 종교적인 사람이라고 왜 말하지 않았어요?” 하고 속삭였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당신은 아버지가 약국에서 일한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하고 속삭였습니다. 


삶은 예상치 못했던 놀랄 일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제가 로마 가톨릭 교회가 그분의 모든 자녀들이 그 일원이 되기를 바라는 하느님의 가족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에 대해 나누는 일은 언제나 저를 기쁘게 합니다. 풀톤 쉰 대주교님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는데, 설명을 하자면 미국에는 실제로 가톨릭교회를 증오하는 사람은 100명도 안되고, 수 천만 명이 가톨릭교회가 어떤 것인지 잘못 알면서 증오하고 있으며, 또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고맙게도 저는 제가 그 두 번째 경우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수 십년간 가톨릭교회를 반대해 왔고 그리고 많은 가톨릭신자들이 교회를 떠나게 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많은 연구와 기도 끝에 로마 가톨릭교회가 성경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저는 알게 됐습니다.



십대에 예수님께로 회심 - Teenage Conversion to Jesus

그것이 바로 오늘 아침 제가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은 것입니다. 저의 회심은 제가 고등학교 때 시작됐습니다. 저는 믿음이 깊은 크리스찬 가정에서 성장 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가족은 교회를 그렇게 자주 가지 않았으며, 저는 별로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저에게 영라이프(젊은 삶) 라는 단체를 사용하셨는데 이 단체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 고등학교 청소년들을 위한 선교 단체로 잭이라는 사람이 특히 저와 친하게 되어 저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많이 나누어주었습니다. 

그것은 제 삶에 깊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고등학교 초기에 저는 결심을 한 후 예수 그리스도께 마음속으로 여쭈어 보 았습니다. 저는 그분께 나의 구세주와 주님이 되어 달라고 청했고, 그분께 저의 죄를 모두 드렸고, 저는 용서와 구원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것은 제 삶을 바꾸었습니다. 친구도 많이 포기해야 했지만,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안의 친구들인 참된 친구들을 주심으로써 더 많이 보상해주셨습니다. 잭은 저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가르쳤고,  또한 성경을 읽는 것을 가르쳐주었는데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고 그 안에 잠겨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또 읽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쯤 저는 성경을 2~3번 통독한 뒤 거룩한 성경책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 결과로 저는 몇 가지의 확신을 얻게 됐습 니다.
 
첫째로, 성경책을 읽는 것 외에도 잭은 마틴 루터의 책들과, 존 캘빈의 책들이 있는 자신의 서재를 저에게 개방해 저는 확신에 찬 개신교가 되었습니다, 그냥 성경적인 크리스찬이 아니라 1500년까지는 가톨릭교회가 택한 근거 없고 이교도적인 행동 때문에 성경이 중세에 거의 사라질 뻔 했다고 믿는 사람이 됐습니다. 저는 이 첫 번째 확신으로 가톨릭교회 신자 친구들에게 단순한 예수의 복음을 보도록 도와 주었고 그들에게 성경을 보여주고 성경에는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며 구세주로 받아 들이면 된다고 나와 있고 그것이 전부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사람들을 끌어 들이는 이런 난센스들 마리아, 성인들, 연옥 등등의 여러가지 신심들로가 아니라 그저 예수님을 주님이며 구세주가 되어달라고 청하면 된다고 말입니다. 

그 당시 저는 가톨릭교회 신자인 한 소녀와 사귀고 있었는 데 우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녀가 계속 가톨릭교회 신자로 남게 되면 우리 둘 사이에는 아무 미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그녀에게 아주 두꺼운 책인 로레인 보트너가 쓴 로마 가톨릭교회라는 책을 주었습니다. 그 책은 가톨릭교회를 반대하는 성경과 같은 책이었습니다. 4백 50 페이지가 넘는 그 책은 가톨릭교회에 대한 거짓말과 왜곡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저는 그런 줄을 몰랐기에 좋은 신앙심으로 그녀에게 책을 주었습니다. 그녀는 내가 준 그 책을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페이지까지 다 읽었습니다. 

 소녀는 그 해 여름에 “그 책 고마워요, 이제 다시는 미사에 안 갈 거예요.“ 라는 편지를 주었습니다. 저는 지금 고통과 수치감을 느끼며 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가톨릭을 반대하는 많은 성경적인 크리스찬들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 주는 것임을 말하고자 합니다. 저는 그들이 제대위에서 흠숭하는 빵 조각은 하느님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는 불쌍한 이교도들이니 반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로마 교황이 수 억 명의 가톨릭교회 신자들을, 그들의 신념과 종교적인 양식에 묶는 무류권을 가진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아니며, 그는 독재자, 간단하게 영적 독재자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가 무류권을 가진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에게는 가톨릭교회 신자들이 교회를 떠나게 하기 위해 제가 보는 대로 그들이 볼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아주 뜻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양가 중에서 유일한 가톨릭신자는 사랑하는 할머니셨습니다. 그분은 조용하시고 아주 겸손했으며, 참 거룩하셨습니다. 그 점은 제가 인정합니다. 그분은 매우 열심한 가톨릭신자이셨습니다. 그분이 돌아 가셨을 때 부모님은 그분의 종교유품들을 제게 주셨습니다. 저는 그분의 기도책과 미사책을 훑어보았고 그 분의 묵주를 발견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저에게는 역겹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할머니께서 참으로 예수님을 믿으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도대체 무얼 뜻하는 것인지 의아해하면서 묵주알을 뜯어서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저는 묵주알들이 그녀를 묶고 있는 사슬이라고 생각되어 이제는 할머니가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졌겠다며 좋아 했습니다. 그것이 가톨릭에 대한 저의 두 번째 견해였습니다. “이들은 믿음은 있지만 거짓에 둘러싸여있다, 그러니 그런 것들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성경을 사랑하는 크리스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저는 목회를 할 뿐 아니라 신학도 공부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 결심은 고등학교 졸업반 때 연구 논문을 쓰면서 하게 됐습니다. 저는 “믿음만으로, Sola Fide” 라는 졸업논문을 썼는데 그것은 라틴어 문구로 믿음만, 혹은 오직 믿음 만으로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마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시작할 때 내건 문구였습니다. 루터는 우리가 앞으로 하게 될지도 모르는 행위로 인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하느님과 함께 의로워 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그것이 그것에 따라 교회가 서 있거나 무너지게 하는 그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톨릭교회는 무너졌고 개신교는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논문을 상당한 연구를 한 끝에 확신을 가지고 썼고, 만약 이 점에 대해 잘못 받아들이면 모든 것에 있어 잘못될 것이며, 또한 믿음에 무엇을 덧붙이면, 복음의 단순한 진리를 오염 시키는 것이라고 보았습 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강한 확신을 가지고 대학에 갔습니다. 


대학 생활 / College Years

대학 4년 동안 저는 철학, 성경신학, 경제학 등 3개를 전공했습니다. 동시에 영라이프에서 사목도 했습니다. 저는 영라이프에서 그리스도를 알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에 그분께 대한 감사의 보답을 하고 싶어서 4년 동안 교회에 나가지 않는, 그리스도를 모르는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데 헌신했습니다. 이 중에는 가톨릭교회 신자 고등학생들도 포함됐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저는 이 불쌍하고 무지몽매한 가톨릭교 신자 영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수 차례 성경 공부를 지도한 후 저는, 이 아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를 뿐 아니라, 제가 만난 가톨릭교 고등학생들은 가톨릭이 가르치는 것을 전혀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한 두 명은 가톨릭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았지만 왜 그것을 가르치는 지를 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가톨릭교회 신자로서 자신들의 신앙을 옹호할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아이들을 마틴루터로부터 배운 복음을 통해 , 즉 반가톨릭교적 관점에서 보도록 이끌었을 때, 그 젊은이들은 마치 제가 물통에서 오리를 건져 올리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런 사전 준비가 없는 그들은 자신을 방어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 15 년, 20년, 25년간 무슨 일이 일어 났는지 저는 정확히 모릅니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그 청소년들은, 믿을 교리를 가르치고 그것을 믿어야할 이유를 가르치는 것은 피해가는 방식으로 교리를 가르치는 실험에 사용된 실험용 동물인 기니피그 같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실제로 그랬습니다. 저는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성당을 떠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당시 일종의 훌륭한 신앙심을 가지고 가톨릭교를 반대했는데 사실은 저 자신도 배운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을 반대했던 것입니다.


영라이프에서 제가 사목을 한 지 3년 째 되었을 때, 저는 그 학교에서 가장 예쁜 한 젊은 여성에게 교회에 다니지 않는 젊은이들을 위한 일을 함께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좋다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2년간 함께 일하면서 크게 부딪친 적이 많았습니다. 어떤 때는 젊은이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놓고 형제가 서로 싸우듯이 격렬하게 싸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존경할 만큼 성장했고 대학 4년이 끝날 때쯤, 저는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했습니다. 그녀는 아마 자신에게는 가장 어리석은 것이었겠지만 나에게는 가장 멋진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좋아요.” 우리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바로 결혼했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비전 을 가지고 있었고 함께 목회를 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나누고 싶어 했기에 사람들 사이에 성경이 살아 있는 말씀인 것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Seminary Years / 신학교 시절
결혼한지 몇 주가 지난 후 우리는 신학교로 떠났습니다. 그때는 얼마나 좋았던지, 함께 신학석사 과정을 공부했습니다. 저는 보스턴에 있는 고던 콘웰 신학교에서 3년과정의 석사과정을 공부했습니다. 아내도 2년 과정의 공부를  마치고 함께 석사학위를 받고 졸업했습니다. 그 때 저는 수석으로 졸업했는데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앙심을 품고 공부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 입니다. 신학교 때 저를 아는 사람들은 저를 늘 긴장하고 있는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깨어있는 동안에는 모두 성경이나 그에 관련된 책을 읽고 연구와 자료를 찾기 위해 헌책방을 뒤졌습니다. 킴벌리와 저는 몇년 동안 참 좋은 시간을 보냈습 니다. 그러나 그때를 되돌아보면 그 때 제 삶에 큰 획을 긋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첫 번째로는 킴벌리가 첫 해에 들은 과목이 기독교 윤리라는 과목이었는데, 제가 일 년전에 이미 공부한  과목이었습니다. 데이비스 박사는 학생들이 소그룹으로 나뉘어 한 주제를 선택하여 토론하게 했는데 그중 한 그룹은 낙태를 주제로 택했고 다른 그룹들은 핵전쟁이나 사형제도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식사 때 킴벌리는 자기 그룹이 피임에 대해 연구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저는 “왜 피임이야?” 하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나는 그 클래스를 들었던 일 년전에는  아무도 그 토론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그녀는 “ 다른 3명이 이미 신청을 했고 오늘 첫 모임을 가지고 대표를 뽑았는데 시작도 하기 전에 그가 우리 연구 결과부터 발표했어. 그가 말하기를, 우리 모두는 개신교도이며 성경적인 크리스챤으로 피 임이 괜찮다고 알고 있다. 아니 I.U.D.와 같은 낙태를 유발하는 피임법을 사용하지 않는 한 괜찮다는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자신은 크리스챤이라고 주장하면 서 “피임을 반대하는 유일한 사람들이 가톨릭교 신자들이다. 그들이 피임을 반대하는 이유는 물론 독신을 지키는 교황과 사제들이 이끌어가기 때문에 자신들은 아이를 키울 필요가 없으면서, 천주교 부모들이 아이를 많이 낳아서 키워야 사제와 수녀들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 논쟁은 킴벌리에게 큰 도움이 못되었습니다. “당신은 그게 최고의 논쟁이라고 생각해요?” 하고 물어보는 킴벌리에게 나는 “ 글쎄 , 당신이 혼자 해보고 싶어?“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킴벌리는 이 문제를 혼자 연구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일주일후, 복도에서 만난 테리가 나에게 “당신 아내가 피임에 대한 흥미 있는 것을 찾아냈어요.” 하고 말했습니다.” 내가 “피임에 대해 흥미 있는 게 뭐예요?” 하고 물어보자 그는 “당신 부인이 쟎아요. 직접 알아보세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날 밤 저녁 식사때 내가 그녀에게 물었죠. “테리가 말하는 게 뭐야?” 그녀는 “1930년 까지는 교파를 막론하고 개신교는 모두가 예외없이 피임을 반대했다는 것을 알아 냈어요.” 라고 했습니다. 내가 “뭐라고? 로마 가톨릭교회의 잔재들을 찾아내려면 몇 세기가 걸릴지도 몰라” 하고 말하자 “그런다 해도 난 그것에 대해 알아 볼 거예요.” 하고 말했죠. 그리고 한 주일이 지났을 때 테리가 다시 나를 불렀습니다. “그녀의 논쟁이 일리가 있어요.” 제가 말했습니다. “성경에 피임을 반대 하는 게 나온다는 논쟁인가요?” 그는 “그녀에게 물어 보세요.” 했고 저는 그때 그런 주제는 직접 물어보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서 “그래야겠어요. 직접 물어볼 께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하자 아내는 책을 한권 건넸어요. 그것은 산아제한과 혼인계약에 관한 것으로 잔 키플리가 쓴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최근 들어 다시 나온 것으로 “성과 혼인계약”이라는 제목이었어요. 저는 성경을 수차례 읽었고 성경전체에 걸쳐 계약은 주가 되는 개념이기 때문에 하느님에 대해 알고 싶으면 계약의 개념에 대해 이해해야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어서 이 책을 큰 흥미를 갖고 열심히 읽었습니다. 저는 책 제목에 있는 “피임과 혼인 계약”이라는 것에 흥미 를 느꼈습니다. 책을 읽어가면서 “이봐 킴벌리, 저자가 가톨릭교회 신자잖아? 날보고 가톨릭교회 책을 읽으라는 거야?” 했지만 그 순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개념을 가톨릭교회 신자가 가로채서 무얼 하고 있는 걸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책을 두 세장을 읽가면서 저는 저자의 말이 너무 설득력이 있어서 책을 던져 버렸습니다. 그 사람의 말이 이해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다시 책을 들고 더 읽기 시작했는데 그의 주장이 정말 맞는 것 같았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계약에 따라 혼인하는 것은 그냥 물리적인 행동이 아니라 하느님이 계획하신 것으로 혼인 계약을 갱신하는 영적인 행위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계약에는 그 계약을 갱신하는 때가 있는데 계약을 갱신하는 행위가 은총의 순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이 계약을 갱신할 때, 하느님께서는 은총을 내 려 주시며 은총은 생명이며 힘이고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키플리는 하느님께서 결혼 행위를 생명을 주는 사랑의 힘으로 제정하셨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혼인 계약에서는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데, 하느님께서 두 사람이 하나가 되게 만드셨고 그래서 그들은 하나가 되어 9 개월 후에는 이름을 지어 주어 야 할 아기를 얻게 됩니다. 그 생명을 잉태했을 때 그 것은 하느님께서 혼인계약을 통해 만든 하나가 되는 것이 실현된 것이며 이것이 하느님께서 만드신 혼인 계약 전부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비슷 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하셨는데 세 분이 한분이신 하느님께서 사람을 만드셨고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으며 “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워라” 하셨습니다. 둘은 하나가 되고 둘이 하나가 된 표징이 자녀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셋이 하나가 된 다는 겁니다. 

저는 그것이 진심으로 이해가 되기 시작했고 그는 이 외에도 그 책에서 여러 가지 논쟁을 이끌어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 책을 다 읽었을 때 저는 완전히 그의 말에 동의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1930 년대에 성공회가 이 전통을 어기고 피임 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으며, 그 뒤 를 이어 모든 중요한 개신교회 교단들이 성의 혁명이라는 압력을 견디지 못해 같은 길을 걸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근 거 한 오래된 교회의 전통을 지키는 유일한 교단이 가톨릭교회라는 사실이 저를 몹시 힘들게 했습니다. 1960년과 70년대에는 제가 속한 미국 장로교회가 피임을 승 인했을 뿐 아니라 늘어나는 낙태에 대한 연방지원을 승락했다는 것을 알고 실망했습니다. 그리고 개신교가 여기저기서 조금씩 타협한 내용들을 찾아내다가 나중에는 그 타협이 홍수가 되어 넘쳐난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가톨릭교회는 2천년이 된 교회로서 무언가 옳은 것을 추구하고 것에 근본을 두고 있었어.” 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우리집에서는 눈먼 바보도 도토리 하나는 찾아낸다는 말을 해왔는데 바로 그런 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대학원 2년째 해를 저는 그렇게 보냈습니다. 신학대 학원 3년째인 마지막 해에 저에게는 위기가 왔습니다.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계약에 대한 과목을 가르치는 신학자인 가르치는 쉐퍼드라는 교수가 있었습니다. 개신교단에서는 그의 과목이 이단이라고 하며 그 교수를 이단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가 쓴 논문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교수님의 글을 읽으면서 저는 그분도 저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개신교에서는 계약을 서로 교환할 수 있는 법적 계약과 동의어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과 계약을 맺을 때도 인간과의 계약과 같은 것으로 이해합니다. 하느님께 우리의 죄를 드리고 하느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주셨으며 구원을 위해서는 모든 것이 믿음에 의한 거래인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연구를 할수록 성경에서는 계약이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결혼과 창녀와의 차이만 큼이나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여러분이 부동산 계약을 할 때 처럼 서로의 것을 계약을 교환하는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이것은 너의 것이고 저것은 내 것이다.” 하고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계약을 맺으실 때도 그 분은 “나는 너의 하느님이 되고 너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다.”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제가 히브리어를 공부한 후에 저는 “Am’이 히브리인에게는 사람을 뜻하는데 친척, 가족을 의미한다 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너의 하느님이며 아버지가 되고, 너는 내 가족 내 아들 딸, 내 식구가 될 것이다.” 그래서 계약은 우리가 하느님과 가족이 되는 왕직으로 연결되는 것이라 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쉐퍼드 교수의 논문을 읽고 저와 같이 하느님 과의 계약은 아들 신분의 계약이라고 말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그래, 맞아! 이게 맞아” 하고 생각했지만 그게 왜 이단인지는 의문이었습니다. 그때 누군가 “쉐퍼드 교수는 ‘믿음만으로’ 라는 것에 의문을 제 기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말도 안돼, 그건 복음인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죄를 위해 돌 아 가셨고, 나는 그분이 나를 구하셨다는 것을 믿는 단순한 진리이고 이미 다 끝난 얘기인데 왜 그 교수가 믿음만으로라는데 질문을 던지는 것일까? 그럴 수는 없어!”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저는 계약에 대한 당신의 글을 읽었는데 여러가지로 이해가 됩니다. 저도 거의 비슷 한 결론에 도달했으니까요. 그런데 어째서 교수님은 루터의 ‘믿음만으로’ 라는 교리에 의문을 제기하게 됐습니까?” 쉐퍼드 교수는 루터의 의롭게 된다는 교리는 신앙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키고 제한시킨 것이라서 그 안에 진리가 담겨있긴 해도 여러 가지 다른 중요한 진리들을 놓쳤다고 말했습니다. 

전화를 끊었을 때 저는 이 문제를 좀 더 집중적으로 파고 들었습니다. 마틴 루터와 모든 성경적 크리스챤과 개신교도들에게는 하느님이 판사이며 계약은 법정에서 범죄자를 심문하는 장면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처벌을 다 대신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의로움을 입었고 그분은 우리의 죄를 지고 가셔서 우리는 자유롭게 되어 의로워진 것입니다. 마틴 루터에게 구원은 법적인 교환이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바오로는 분명히 구원은 그 이상의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구원은 로마 법정이 아닌 히브리인들의 가족 법정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단순히 심판하시는 판사가 아니라 아버지이 시며 그분의 심판은 아버지로서 하시는 것이라는 것, 예수님은 우리의 처벌을 대신 받는 단순한 무죄한 희생물이 아니시라는 것, 우리의 수많은 형제 중에 맏이시며, 가족 중 가장 큰형이시고 우리를 도망간 탕자나 하느님의 가족에서 떨어져 나간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새 계약에서 법적인 교환뿐 아니라 하느님 외아들의 신분을 우리에게 주셔서 참으로 하느님의 가족이 되게 하셨다는 것 입니다.  제가 이것을 친구들과 나누자 그들은 “그래, 맞아, 그게 바오로야!”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루터와 칼빈의 글을 읽었을 때, 저는 더 이상 그들의 글에서 이러한 신념을 찾아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 들은 제가 성경을 공부하도록 훈련시켰지만 그들의 가르침에 중대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첫째, 성경에는 어디에도 믿음만으로라는 구절이 없 으며 두 번 째로, 마틴 루터가 독일어 성경번역판에 로마서 3장에 “ 만으로” 라는 것이 그리스어판에 없다는 것을 잘알면서도 삽입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믿음 만으로가잘못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스말로 된 거룩한 성경 어디에도 성령께서 성경저자들에게 믿음만으로 구원된다는 영감을 주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바오로는 우리에게 믿음으로 구원된다고 가르쳤으나 갈라디아서에서 그는 우리가 사랑 안에서 일하는 믿음 안에서 구원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것이 바로 가족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까? 아버지는 아이들한테 “ 얘들아 너희들은 내 가족이고 네 친구들은 다 내 가족이 아니다, 너희들은 일할 필요가 없다. 너희들은 복종할 필요도 없다, 너희들은 희생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너희들은 구원받았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너희들이 어떻게 하던 간에 상속을 받을 것이다. “ 하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는 게 아닙니다.


저는 마음이 바뀌었고 걱정이 많이 됐습니다. 제가 아는 가장 탁월한 교수인 잔 거스트너 박사는 한때 “만약 우리가 믿음만으로라는 것이 잘못이라면 다음날 아침 나는 로마의 바티칸 밖에 무릎 꿇고 앉아서 속죄 할 것이다.” 라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무슨 웃기는 논리냐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정확하게 짚었던 것입니다. 이 가르침은 그 부분에서 모든 다른 교리가 나오는 중요한 것입니다. 때문에 만약 그 부분에서 잘못됐다면 어디서 어떻게 잘못 되었는지를 확실하게 알아야 하는 큰 숙제를 해야 할 입장이 되었 습니다. 저는 걱정이 됐지만 크게 염려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당시 스코틀랜드는 계약신학이 탄생되고 발전시킨 곳이기 때문에 저는 애버딘 대학교에서 계약 교리를 공부할 계획이었습니다. 제 마음은 그곳에서 계약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은 열정으로 가득했습니다. 결국 그것이 제 박사 논문 거리가 될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당장 이 문제 해결에 나설 마음은 없었 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킴벌리가 임신을 했습니다. 마가렛 대처영국 수상은 미국인이 그 나라에서 아기를 낳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스코틀랜드로 가서 공부할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일년을 쉬면서 졸업이 가까워지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호에는 “버지니아에서 개신교 목사가 되다” 가 계속 연재됩니다.)

< 2016년 '평화의 모후 선교회' 발행 "평화의 모후" 소식지 72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