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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나는, 특별히 내 마음 안에서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고 그 수난을 살며 너희와 함께 있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 마음을 열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기쁨과 슬픔과, 가장 작은 고통 하나하나까지도 모두 나에게 주어라. 나는 그 모든 것을 예수님께 바치고 싶다.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무한한 사랑으로 너희 슬픔을 태워서 당신 부활의 기쁨으로 바꿔 주실 것이다. 어린 자녀들아, 그래서 지금 특별히 나는, 기도하면서 마음을 열라고 너희를 부르는 것이다. 기도를 통해서, 너희는 예수님의 친구가 될 수 있단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1999년 2월 25일 성모님 메시지)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고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 개신교 목사의 가톨릭 개종 -2)  


버지니아의 교회에서 목사가 됨

어느 날, 버지니아 지역에서 매우 좋은 평을 받고 있는 유명한 교회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스캇 한, 당신을 우리 교회의 목사로 초대하고 싶은데 이곳에 와보시겠습니까?” 이 말은 제가 그 교회의 장로들과 인터뷰를 하고 시험 설교와 성경 공부를 지도해야 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제안을 승낙하고 그 교회의 장로들과 인터뷰를 한 후에 설교를 하고 성경공부를 이끌었습니다. 그들은 “스캇 한, 참 잘하셨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교회를 이끌어 주기를 원합니다. 일주일에 20시간은 성경과 신학 공부 및 설교와 교리를 가르쳐 주십시오. 또한 일요일 아침 예배에 때 최소한 45분간 성경 말씀을 가르쳐 주기를 바랍니다. 수고료는 충분히 지불하겠습니다.” 만약 가톨릭교회에서 사제가 일요일에 45분간 강론을 하면 신자들의 반응은 어떨까요? 다음 주에는 성당 전체가 텅텅 비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들은 저에게 적어도 45분간의 설교를 요청했습니다. “그렇게 원하시는 것이 저에게 큰 부담이 되는군요.” 라고 말하는 제게 교회의 임원들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우리를 하느님의 말씀에 푹 잠길 수 있게 해주기를 원합니다.” 저는 그 교회에서 목사직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그 교회에서 첫 번째로 한 설교는 계약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그들이 계약(Covenant)을 법적 계약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을 가족과의 계약이라고 수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하느님 가족으로서의 계약이 우리가 누구인지를 더 잘 설명해주고 그리스도께서 성경 안에서 하신 어떤 것보다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말했습니다. 아버지이신 하느님은 외아들 예수님과 성령을 통해 우리가 그분과 한 가족이 되게 하셨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하느님과 우리와의 계약에 대한 설교가 신자들의 가족과 결혼에 대한 의식에 큰 영향을 미치며, 마치 산불처럼 순식간에 교회 안에 퍼져가는 것을 보면서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네 번째로는 성경이 말하는 계약은 ‘하느님의 가족들이 그리스도 희생의 음식을 축하하는 전례와 계약 그리고 가족에 대한 것’이라고 가르치면서 가족들의 음식인 성찬식을 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제가 ‘성체’ 라는 말을 했으나 그들은 그러한 단어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계약의 가족으로서 매주 성찬식이 필요 할 지도 모르며, 강론 중심 대신에 하느님의 가족으로서의 의미를 기념하는 것을 해보는 것이 어떠겠냐”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저의 그 제안을 매우 좋아 했습니다. 그 때 한 남자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성찬식을 매 주 하자니요? 너무 익숙해지면 그 의미를 무시할 수도 있는데, 당신은 우리가 매 주 그 예식을 해야 한다고 확신하시나요?” 제가 대답했죠. “그래요? 잠깐만, 당신은 아내에게 일 년에 4번만 사랑한다고 말해주나요? 여보, 사랑하다는 말이 익숙해지면 그 의미를 무시하기 쉬운 거야.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일 년에 4번만 키스해 줄 거야” 그 비유를 듣고 그가 말했습니다. “ 네. 잘 알겠습니다.” 


저는 교회의 전례를 바꾸면서, 우리 교회는 공동체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들의 경험도 바뀌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습니다. 하느님과의 계약에 대해 더 많은 설교를 할수록 그들은 더 배고파하고 목말라했습니다. 저는 그 당시 인근의 크리스찬 고등학교에서 파트타임으로 가르치고 있었는데 우리 교회의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제가 만난 아이들 중 매우 똑똑한 아이들도 있었는데 이 계약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응답했습니다. 그들에게 구세사에 대한 것을 가르치기 시작하자 처음에는 수많은 이름과 장소들이 발음하기도 어려워 이해가 쉽지 않아서 겁을 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단 가족으로서의 계약을 생각해 보면, 아주 간단한 거야” 하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에게로 이 끌어주는 구약의 계약들에 대한 설교로 학생들을 인도했습니다. 


첫째계약은, 하느님께서 아담과 맺은 계약인데 그것은 혼인이며, 가족의 유대이다. 둘째 계약은 하느님께서 노아와 맺은 것으로 그것은 가족과의 계약인데 노아의 가족인 노아와 그의 아내와 세 아들들 그리고 그들의 세 아내들과 맺은 계약이다. 그들은 함께 하느님의 가족을 형성했고 믿음의 가족이 되었다. 그 후, 아브라함의 시대에 하느님의 가족은 크게 불어나 부족이 형성되었다. 그 다음 하느님께서는 모세와 이스 라엘의 12 부족과 계약을 맺은 후에 하나의 나라가 되었고 그들은 계약을 통해 하느님의 백성으로서의 가족을 이루었다. 그리스도께서 마침내 그분의 새 계약을 세우실 때까지 하느님의 가족이 하나의 나라로 인식되는 대신 지금 우리는 국제적인 가족인 세계적인 가톨릭교회의 가족을 이루었다고 가르쳤습니다. 학생 중 하나가 손을 들더니 “우리가 만일 실제로 그것을 재현해 보면 어떻게 보이게 될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칠판에 삼각형 피라미드 그림을 그리고 했습니다. “거대한 대가족을 연상해 보자. 아버지 어머니가 있는 그리고 여러 가지 다른 계층들과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형제자매가 되는 것이지” 그러자 누군가가 뒤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런데, 나에게는 천주교회 같이 보이는군요.” 당황스러워서 제가 말했습니다. “아니, 아니야! 내가 말하려는 건 문제에 대한 해답이야, 독에 대한 해독제를 말하는 거라구” 강의가 끝나고 점심시간에 레베카가 나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스캇 교수님, 당신의 강의가 끝난 후 우리들이 투표를 했어요. 그런데 만장일치로 당신이 로마 가톨릭 천주교인이 될 거라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저는 그 말을 듣고 너무 놀라서 먹고 있던 샌드위치가 목에 걸릴 뻔 했습니다. “왜들 이러지? 제발 조용히들 해줘, 나는 이 일을 계속하고 싶어. 레베카, 내가 말하는 것은 천주교가 아니라 천주교라는 독에 대한 해독제를 말한 거야” 그러나 레베카는 이런 말을 남기고 가버렸습니다. “교수님, 그러나 우리들은 만장일치로 당신이 곧 천주교인이 될 거라는 결론을 내답니다.” 그녀의 말은 저는 쇼크를 받았습니다. 

놀란 마음으로 오후에 집에 가서 부엌 냉장고 앞에 서 있는 킴벌리에게 말 했습니다. “ 오늘 레베카가 내게 뭐라 말했는지 당신은 짐작도 못할 거야.” 킴벌리는 “ 또 다른 레베카예요? 무슨 말인지 해봐요.” “오늘 점심시간에 그녀가 내게 말하기를 학생들이 교실에서 투표를 했는데 만장일치로 내가 천주교인이 될 거라고 했다는 거야, 세상에 맙소사! 당신은 내가 천주교인이 된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어?” 그러자 킴벌리는 굳은 얼굴로 나를 보며 말했습니다. “그들의 말이 맞지 않아요. 당신?” 그 말은 마치 내 등에 칼을 꽂는 느낌이었습니다. “킴벌리! 당신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난 캘빈주이자야. 캘빈주의자중의 캘빈주의인 장로교 신자라구, 나는 천주교를 반대하는 사람이야! 사람들에게 보에트너 책을 수십 권이나 나눠주고 수많은 이들을 천주교에서 개종시킨 사람이야! 마틴 루터의 사상에 흠뻑 젖어 있는 사람이 바로 나라구!” 아내가 다시 말했습니다. “ 맞아요, 그러나 어떤 때는 당신이 루터교회의 가르침과는 정반대의 주장을 한다고 생각되기도 해요.” 킴벌리의 말에 나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천천히 내 서재로 가서 문을 닫고 의자에 털썩 주저 않았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킴벌리의 말은 내가 생각하는 구원과는 정반대라서 덜컥 겁이 났습니다. 아마도 내가 공부만 많이 하고 기도를 너무 적게 한 탓이라는 생각에 기도를 더 많이 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리고 가톨릭을 반대하는 이들이 쓴 책 들을 더 많이 읽었지만 왠지 그 책의 내용들은 더 이상 나에게 설득력이 없었습니다. 저는 가톨릭 교회와 관련된 책들을 찾아서 더 많이 읽기 시작했습니다. 




장로교회 신학교 교수가 되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또 다른 극적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장로교 신학교에서 신학생들에게 요한복음 세미나를 해달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저는 신학생들에게 요한복음에 관한 계약, 하느님 가족에 대한 것, 다시 태어난다는 것에 대한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이며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그분이 마음속으로 들어오게 해달라고 청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됐습니다. 물론 그 것이 천주교나 기타 다른 종교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모시고 그분과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살아야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3장에서 다시 태어나야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주위를 둘러보시며 너희는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전 장에서 예수님께서 물로 세례를 받으신 후에 바로 성령께서 그분께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곧 이어서 니코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 장에는 제자들에게 세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고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저는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계약을 맺는 것이며, 바로성사이고, 세례를 포함하는 계약갱신이라고 신학교 학생들에게 가르쳤는데 모두 그 뜻을 알아 들었습니다. 저는 요한복음 6장의 참으로 풍요로운 말씀이 특별히 좋았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3장에 대한 강의를 준비하면서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의미를 알게 됐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저는 그 복음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리고 10가지의 다른 각도로 그 대목을 살펴보았습니다. 또한 요한복음서에 대한 해설서를 모두 구해서 읽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은 비유적으로 해석하라고 배웠는데 예수님은 상징을 사용하고 계셨습니다. 육체와 피는 그분의 피와 몸에 대한 상징에 불과하다고... 그러나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저는 그런 해석은 아무 설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말씀을 들은 유태인들이 모두 떠났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수 만 명이 예수님께서 “내 살은 참된 음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이다.”라는 말씀을 듣고 갑자기 대부분이 그분 곁을 떠났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그저 비유 적으로 하신 말씀이라면, “잠깐, 나는 단지 비유로 설명 했을 뿐이다.“ 라고 하실 도덕적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어떻게 하셨던가요?


제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그분은 열 두 사도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 우리가 홍보요원을 고용해야겠다. 내가 그 사람들을 쫓아 버렸구나. 내가 오직 비유와 상징으로 말했다는 것을 너희들은 알아듣겠느냐?”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기에 나는 너희에게 참된 진리를 가르쳤다. 이제 너희들은 어떻게 하겠느냐?” 베드로는 “주님,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예 수님, 당신은 아십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우리는 당신 말씀을 잘못 알아 듣겠습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가야 하는지요? 혹시 당신께서 우리에게 추천해 주실 랍비가 있으십니까? 이제 너무 늦었어요. 당신의 말씀을 우리가 완전히 이해를 하지 못해도 우리는 다 믿습니다. 우리가 당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라고 한다면 당신께서 는 우리가 액면 그대로 그 말씀을 다 받아들이게 할 은총을 주실 것 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을 때, 저는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세례를 받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임을 장로교회 신자들도 깨닫게 해야 함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어떻게 개신교 신자들에게 천주교인들처럼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한다는 것을 인식시킬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주님의 만찬과 성찬식에 중점을 두고 알아 본 결과, 예수님께서는 “계약”이라는 말을 공생활 중에는 사용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분께서는 성체성사를 제정하실 때까지 그 말씀을 유보하셨다가 “이것은 새로운 계약을 맺는 나의 잔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계약이 가족을 의미한다면, 무엇이 우리를 그분의 가족으로 만들겠습니까? 바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새 계약을 하신다는 것은 새 가족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는 당신의 새 살과 새 피를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약속이셨습니다. 저는 초대 교회에서 왜 7백 여 년이 넘도록 아무도 예수님의 이 말씀에 대해 논쟁을 하지 않았는지를 알았습니다. 모든 초대교회 교부들은 예외 없이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 들였고 성체안의 예수님의 현존을 믿고 가르쳤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두려웠습니다. 도대체 어는 곳을 선택해야 할지, 누구에게 돌아가야 할 지 혼란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세미나에서 제가 예측하지 못했던 에피소드가 발생했습니다. 천주교신자였던 존이라는 학생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는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에 대한 공식적인 대응이었던 트렌트 공의회에 대한 세미나 발표를 막 끝낸 후였습니다. 존은 한 시간 반이나 트렌트 공의회에 관한 것을 하고 싶은 대로 조명했습니다. 존은 그 들의 논쟁 중에 많은 것들이 성경에 근거한 것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죠. 학생들이 몇 가지 질문을 할때 존이 내게 물었습니다. “교수님, 제가 먼저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당신은 루터가 두 가지 슬로건을 내걸었던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그는 ‘믿음만으로’ 뿐 아니라 로마 가톨릭에 대항하여 두 번째로 ‘성경 만으로’도 내세웠지요. 그런데, 도대체 성경 어디에서 그런 말을 가르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제 질문입니다.” 

저는 눈을 껌벅이며 존을 쳐다보았습니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이전에 저는 교수님이 가장 곤란해 하는 질문을 하는 것에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질문은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 존, 그건 바보 같은 질문이야.” 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존은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그럼 교수님이 바보 같은 대답을 해주시죠.” “좋아, 같이 노력해보지. 존, 디모데오 후서 3장 16 절이 열쇠예요.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이므로, 가르치고, 꾸짖고, 올바르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 유익해요. 그리하여 하느님의 사람이 온갖 선행을 할 능력을 갖춘 유능한 사람이 되게 합니다.” 그런데 존이 다시 말했습니다. 

“잠깐만요, 스캇 교수님, 그것은 성경이 옳은 것에 대한 영감이 있고 유익하다고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성경만이 영감을 받았다거나, 성경만이 그런 것들에 유익하다는 것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습니다. 우리에겐 기도와 같은 다른 것들도 필요해요. 데살로니카 후서 2장 15절은 어때요?” “그게 뭐지?” “바오로는 데살로니카 사람들에게 자신이 말이나 글로 써 보낸 전통을 따르고 지켜야한다는 말이 적혀 있어요.” 전 그 때 존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한 채 말했습니다. “그래, 존, 이 문제는 다음 주에 논의하기로 하고 이제 질의응답을 계속 진행하도록 하면 좋겠다.” 


제가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었는지 그들은 몰랐을 겁니다. 저는 차를 몰고 집을 향하면서 하늘을 쳐다보며 하느님께 물었습니다. 왜?... 그런 질문을 전에는 제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는지?... 왜, 나는 존에게 대답을 하지 못했는지를... 다음 날, 저는 미국 내의 신학자들과 교수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마틴 루터가 말한 ‘믿음만으로와 성경만으로’가 성경 어느 구절에 나와 있습니까? 성경 어디에서 성경만이 유일한 권위라고 가르치고 있나요?“ 어느 신학자가 제게 말했습니다. “ 스캇 교수님, 왜 그런 어리석은 질문을 하십니까?” 저는 존이 제게 했던 것과 같은 말을 그분에게 했습니다. “교수님, 그럼 당신이 저에게 어리석은 대답을 해주시겠습니까?” 그런 혼란 중에 있을 때, 제가 매우 존경하는 옥스포드 대학의 신학자 교수님이 말했습니다. “ 스캇 교수님, 성경 안에서 ‘성경만으로’ 라는 단어를 찾을 생각은 하지 마세요. 그 것은 성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정한 말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접근할 때 추정하는 것일 뿐이지요.” 


그분의 말을 들으면서 저는 마치 크게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당혹스러워서 다시 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수님, 참 이상한 일이군요. 우리는 신자들에게 오직 성경이 가르치는 것만을 믿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데 성경에는 그런 말이 없다니요? 그럼,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어 온 것이 성경에는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그 말씀은 마치 그동안 속해 있던 가지를 잘라 내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분이 제게 물었습니다. “스캇 교수님, 그러면 우리에게 어떤 다른 선택이 있나요?” 그렇습니다! 정말 맞는 말이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인 신학교수가 제게 말했습니다. “스캇 교수님, 당신이 천주교로 개종하는 것을 고려 중이라는 말이 있던데 그게 사실 인가요?” “글쎄요. 아서 교수님, 나는 천주교로 가는 걸 고려해 본적이 없습니다. 당신이 믿는 진리의 기초와 기둥이 무엇인가요?” 신학교수가 대답했습니다. “스캇 교수님, 우리 모두에겐 성경이 진리의 기초이고 기둥이지요.” “아서 교수님, 그런데 왜, 디모데오 전서 3장 15절에서 진리의 기초와 기둥은 교회라고, 믿는 사람의 집이라고 말했나요?” 잠시 침묵이 흐른 후, 그분이 말했습니다. 

“스캇 교수님, 당신은 그 문제로 나를 함정에 빠트리고 혼란을 주는군요.” 그분에게 제 심정을 말했습니다. “아서 교수님, 지금 나는 여러 가지 문제로 함정에 빠진 것 같이 느껴져요.” “스캇 교수, 그러면 어떤 교회인가요? 교회는 많잖아요?” 저는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교수님, 진리의 기초와 기둥이 되도록 도와주는 교회가 몇 개나 되나요? 제 말은 만약 당신이 우리가 진리의 기초와 기둥이 된다고 하는 교회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우리와 당신을 돌아보세요. 그리스도가 말씀하시고 가르치는 것을 듣게 되나요? 그런 것을 하는 곳이 얼마나 되나요? 제가 알기로는 오직 하나! 로마 가톨릭 천주교회예요. 그리스도가 세우신 교회라고 가르치고 설립된 지 2천년정도 됐고 거기서 주장하는 것이 디모데오 전서 3장 15절과 기분 나쁘도록 유사하다는 생각이 드는 군요.” 그런데 이런 말을 하면서도 저는 제가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제가 가르치는 세미나의 이사장인 스티브에게 점심 식사를 같이 하자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사장이 식사 초대를 하는 것은 제가 천주교에 대한 것을 가르친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약속 장소로 가면서도 그가 어떤 말을 할지 매우 염려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이사장은 제가 가르치는 과목이 매우 성황이고 학생들의 등록이 크게 늘어났다고 하며 이사회에서 저에게 신학교 학장을 맡기는 것을 만장일치로 통과됐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뜻밖의 소식에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26살밖에 안된 절보고 신학교 학장을 맡아달라니… 이사장은 “우리는 당신이 원하는 과목을 잘 가르치도록 모든 지원을 하겠습니다. 필요하다면 강사도 고용 하십시오. 스캇 교수님, 당신이 원한다면 신학박사 공부를 하시고 비용도 저희가 지불하겠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근처에 신학 박사 학위를 할 대학이 있나요?” 이사장은 “네, 카톨릭 대학교가 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아니야, 나는 가톨릭 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지 않아.” 하고 나의 내심을 부정하면서 스스로 달랬습니다. 대답을 못하고 있는 저에게 이사장이 말했습니다. “교수님, 저희가 제시하는 신학교 학장직에 대하여 기도해보시겠어요?” 저는 “노력 해 보겠습니다. 그러나 스티브 이사장님, 아마도 저는 못하겠다는 대답을 드릴 거 같군요. 왜 그런지는 지금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며 집에 돌아왔습니다. 저를 기다리고 있던 아내 킴벌리가 물었습니다. “학교 이사장이 무슨 말을 하던가요?” “나보고 신학교 학장이 돼 달라더군..” 킴벌리가 놀란 얼굴로 말했습니다. “스캇, 당신 지금 장난 하는 거예요?” “아니…” “그럼, 뭐라고 대답 했다구요?” “싫다고 그랬어.” 킴벌리가 놀란 음성으로 다시 말했습니다. “ 스캇! 잠깐 잠깐만… 지금 뭐라고 말했어요? 싫다니요? 왜, 학장직이 싫다고 했어요?”


“킴벌리, 나는 지금 많이 혼란스러워. 학생들에게 무얼 가르쳐야할지 잘 모르겠다고. 성경이 가르쳐주는 게 뭔지 언젠가 예수님의 심판대에 섰을 때, 단순히… ‘예수님, 저는 스승들에게 배운 대로 가르쳤을 뿐입니다. 그들이 성경에서 나온 것이 참되다고 보여주었고 저는 그들이 보여준 것을 신뢰해야만 했어요.’ 하고 말해야 한다는 것 밖에는 모르겠어…” 킴벌리는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꼭 포옹해 주었습니다. “스캇, 그런 점이 바로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예요, 나는 바로 그 점 때문에 당신과 결혼했어요, 그렇지만, 우린 기도해야하겠지요” 그녀는 나의 결정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말은 이사장의 제안을 거부했을 뿐 아니라 성장하는 교회였고, 참 행복했던 그 교회의 목사직도 그만 두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다음호에서 계속 됩니다)

( 평화의 모후 선교회 발행 "평화의 모후" 소식지 73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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