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성체안에 계신 당신을 간절히 원하옵니다 .
개신교 목사의 가톨릭 개종 (3)

 

대학 총장 보좌

7월의 덥고 건조한 날씨지만 우리는 오래 기도한 후, 처음 만났던 대학 동네로 가기로 결정했다. 그곳에서 여러 직장에 지원했는데 대학교에서 총장을 보좌하는 직장에서 2년간  일했다. 낮에 일하고 저녁에는 아이들을 돌본 후, 새벽 1~2시까지 연구에 몰두 할 수 있었다.  2년 동안 수 백 권의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가톨릭신학자들의 글을 읽었다. 나는 그들의 영감에 충격을 받고 내 생각과 매우 일치한다는 것에 더욱 놀랐다.  내가 오랜 시간을 들여  발견한 수 많은 소설과 혁신적인것을 그들은 단순하게 추정하고 받아 들인다는 것이 나를 무척 힘들게 했다. 


        가끔 킴벌리에게 책의 일부를 읽어 주기도 했다. “작가가 누군지 들어 봐” 아내는 신학자였지만 아이들을 키우느라고 책을 볼 여 유가  없어서 내 옆에 앉아서 듣곤 했다. “그 책을 쓴 사람이 누구일 것 같아?” 하고 물으면 아내가 대답했다. “와우, 그건 당신이 버지니아에서 강론한 내용 같아요. 그 시간들이 참 그립네요.” “ 킴벌리, 이건 2차 바티칸 공의회의 ‘현대 세계 안에서의 교회 헌장’이야”  아내는 “스캇, 그만 하세요. 듣고 싶지 않아요.” 했다. “이것은 전례에 대한 것인데 매우 흥미로워,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성공회로 가기를 바라시는 것 같아.” 성공회는 개신교와 가톨릭교회 중간에 있는 종교다.  


       아내가 눈물이 가득 찬 모습으로 난를 바라보며 말했다. “성공회라니요! 난 장로교 신자예요. 아버지가 장로교 목사시고 삼촌도 장로교 목사예요. 내 남편도 장로교 목사고, 남동생도 장로교 목사가 되고 싶어해요. 나 자신도 목사가 되고 싶어요. 난 성공회로 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킴벌리는 마 치 나에게 배신당하고 버려진 듯한 느낌인 것 같았다. 나는 심사숙고하기 위해서 관련 책을 좀 더 많이 읽으며 몇 달을 지내던 어느 날 밤,  나는 아내 킴벌리에게 외쳤다. “킴벌리, 나도 아직은 확실하게는 모르겠지만 하느님께서 우리를 로마 가톨릭 교회로 부르신다는 생각이 들어” 그녀가 절망 적인 표정으로 물었다. “스캇, 우리 그냥 성공회로 가면 안될까요? 다 괜찮지만 가톨릭교회만은 절대 안돼요” 이런 나에게 점점 더 절망감에 빠진 아내는 신학자든 목사든 누군가를 보내 남편을 구원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지 않았음에도 마침내 그 일이  일어났다.



천주교로 직행하는 길

어느 날 고전과 신약에서 영예로운 피 베타 카파학자 (Phi Beta Kappa)인 가장 절친한 신학교 친구 게리에 게 전화가 왔다. 그는 신학교 때 유일하게 나와 함께 교황이 적그리스도라고 믿고 있었던 장로교의 오래 된 신념을 열정적으로 지지하는 동지였다. 우리는  어 깨를 나란히 하고  장로 교우들의 어떤 타협도 거부하며 반대했다. 어느 날 밤, 그의 전화를 받고 부이어 신부 (Fr. Bouyer)의 글을 읽어 주었다. 그러자 게리는 “와, 정말 깊고 심오한 내용이네. 누가 쓴 거야?” 내가 “루이스 부이어야” 하자  그가 물었다. “부이어? 한번 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인데 어떤 사람이야? 감리교 야? 침례교?  루터교야?  20가지 질문은 또 뭐고?”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게리, 사실은 그가 천주…” “잘 안들려 뭐라고?”  “그는 가톨릭 교회..”  “잠깐만, 연결이 아주 안 좋은 거 같은데, 스캇,  지금 가톨릭 교회라고 말했나?” 나는 마치 나이아가라 폭포 처럼 말을 쏱아내며 게리에게 말했다. 


       “그래  맞아, 그는 가톨릭이야, 가톨릭신자라고, 난 그동안 가톨릭 교회 책을 아주 많이 읽었어, 데니얼루, 랏칭거, 드루 백, 게리구-라 그랜주, 콩가등등의 가톨릭교 신학자들의 책을 많이 읽었는데 그 내용들이 너무 풍요롭고 신비해,  당신도 꼭 읽어 봤으면 좋겠어.“ 게리가 어렵게 말했다. “그러지, 나도 그 책들을 모두 읽어 볼께, 당신을 그 수렁에서 구해야 하니까. 그리고 내가 주는 책 리스트를 스캇, 당신도 꼭 읽어 봐야 해.”  그는 나에게 가톨릭을 반대하는 책의 제목들을 길게 알려 주었다. “ 게리, 난 그 책들을 이미 두 2~3번씩은 더 읽어 봤어.” “그래? 그럼 조금 전에 말한 책 목록을 나한테 보내 줘.”  나는 책제목들을 게리에게 보냈다. 


      한달이 지난 후, 게리와 긴 대화를 하는 나를 보며 킴벌리는 매우 좋아했다. 드디어 번쩍이는 갑옷을 입은 유능한 기사가 와서 내 남편을 로마 가톨릭교의 손아귀에서 구해 내겠구나! 하는 기대로 매우 흥미로와 하며 대화가 끝날 때까지 곁에서 기다렸다. 나는 그녀에게 게리가 내가 알려준 책들을 모두 읽었으며, 그는 내 마음을  진지하게 이해하고 받아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아내는 매우 흡족해서 말했다. “와 ~ 대단하네, 난 그가 그럴 줄 알았어.” 게리와 나는 몇달 동안 대화를 계속했 다. 장거리 전화로 2~3시간씩 신학과 성경에 대한  토론하다 보면 어느 새 새벽 4시가 되곤 했다. 


      킴벌리는 게리를 무척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나와 진지하게 대화하는 것에 대해 매우 만족했다. 어느 날 밤, 그날도 게리와 대화하다가 새벽 2~3경  안방으로 갔다. 방의 불은 꺼져 있었지만 킴벌리는 자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 됐어요? 내게도 말해줘요.” “아주 좋아, 게리는 가톨릭 교회가 말하는 성경의 진실에 대해 흥분하고 있고 거의 해독 했대.” “뭐라고요?” 놀라는 킴벌리의  얼굴을 볼 수가 없어서 나는 고개를 돌렸다. 얼굴을 베개에 파묻고 흐느끼는 킴벌리는 자신이 큰 상처를 받고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위로 조차할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난 후, 게리가 전화 로 내게 말했다. “스캇, 나 정말 겁이나, 우리 친구들도 다 겁을 내고 있어, 하버드에서 공부한 장로교이고 반가톨릭 교회주의자인 잔거스터 박사와 대화를 했어. 그가 우리와 만나서 대화해 주겠대.” 게리와 나는 거스너 박사와  함께 6시간 동안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 경과 그리스어로 된 신약 성경 그리고 교회사의 공의회 문헌 등등에 대해 긴 토론을 했다. 우리는 6시간이 지나면 이 천재교수를 통해  우리가 가진 의심들이 전 부 해결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게 어떡게 된 일인가! 결과는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가톨릭 교회는 아예 방어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사자와 같아서 우리 밖으로 나오게 하니까 스스로 자신을 돌보았다. 우리는 가톨릭교회의 가르침과 성경에 나타난 단순한 내용들을 그에게 물었는데 그는 우리 질문이나 반대에 단 하나도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끝에 가서 우리는 “와~ 이 모든 것이 무얼 의미하는 거지?” 하고 말했다. 우리 중 누구도 몰랐던 사실에 가장 가톨릭을 반대하는 신학생이었던 우리는 하느님이 가톨릭교인가 하는 생각에 공포에 휩싸였다. 그 와 중에서도 나는 마켓 대학교 (Marquette) 에 지원서를 보냈다. 이유는 그 학교가 교회에 대한 연구와 좋은 일도 많이 하며 계약에 대해 잘아는 훌륭한 신학자들이 많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 학교로부터 합격통지와 장학금도 받게 됐다는 것을 알기 전에, 인근의 가톨릭교회 사제들을 찾아 가면서 혹시나 하는 두려움에 아무도 보지 않는 밤에 찾아갔다. 사제관에 들어갈 때는 내 자신이 왠지 지저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여러가지 질문을 사제에게 했다. 대부분의 사제들은 “우리 신학적인 얘기말고 다른 이야기 합시다”, 하며 아무도 제 질문에 대해 토의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들 중 한사제는 “개종하고 싶다고요?  그러지 마세요, 2 차 바티칸 공의회 후에 개종을 권하지 않고 있어요. 교회를 위해 제일 좋은 일은 그냥 장로교 목사로 있는 거요.”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신부님..”  “그냥 나를 ’마이크’ 라고 부르세요.”  “좋아요 마이크, 당신더러 제 팔을 부러뜨리고 내 무기를 부수어 달라는 게 아니라, 하느님이 저를 부르고 계신 것 같다니까요?”  그는 “만약 당신이 나에게서 도움을 바란다면 사람 잘못 찾아온 거요” 하고 말했다. 이와 같은 사제를 3~4 명 만난 후, 나는 혼란스러웠다. 킴벌리는 ”당신은  풀 타임으로 공부할 수 있는 가톨릭교회 학교에 가야 해 요, 가서 직접 물어 보지요. 당신이 믿는 가톨릭교회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지” 아내 말이 맞았다. 그래서 오래 기도한 후에 우리는 2년 동안 박사 과정을 풀타임으로 공부할 수 있는  밀워키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지내는 2년은 공부하고 기도하면서 시간중 가장 풍요로웠다. 몇몇 세미나에 참가했지만 나는 가톨릭 신자에게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을 방어하는 유일한 외로운 개신교신자였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예를 들면 아주 성경적이며 “계약적인”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가르침에 대해 내가 이 사람들에게 설명을 하자 오직 몇 명의 훌륭한 신학자들만 동조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당시를 정말 즐겼습니다.  그때 갑자기 두 가지 일이 생겼다. 저는 묵주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제가 그런다는게 참 두려웠지만  하느님께 내가 하는 일이 반대 받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드렸다. 묵주 기도를 계속 하면서  마음속에서 내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사실이 더 뚜렷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하느님이 아버지이고  주님과 형제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시게 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가톨릭교회로 개종할 것을 아는 친구가 어느 날 전화로 물었다.” “너도 마리아를 가톨릭교회 신자들처럼 흠숭하니?”  “그들은 마리아를 흠숭하는 것이 아니라 공경하는 거야.” “그 차이가 뭐지?” “설명해 볼께, 예수님께서 그분의 아버지로부터 사람이 되라는 말을 받아 들였을 때 그분은 10 계명에 있는  도덕적인 법을 지킬 의무도 받아 들이셨어. 10 계명엔 “네 아버지 어머니를 공경하라”고 되어 있지.  공경이라는 히브리 단어 kaboda는 영광스럽게 한다는 뜻으로 네 어머니와 아버지께 영예를 드린다는 뜻이야. 예수님께서는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계명을 잘 실천하셨기 때문에 그분의 영광을 천상 아버지께도 돌렸고 자신의 신성한 영광으로 어머니도 공경하셨지. 크리스, 우리가 묵주기도에서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그분의 어머니께 자신의 영광으로 공경 하셨던 것을 따라하는 것일 뿐이야. 우리는 그분을 예수님의 영광으로 공경하는 거야.”


      두 번째 일어난 일은 예수회의 마켓대학교 지하 성당에 잠시 들어갔을 때다. 정오 미사가 봉헌되고 있었는데 나는 처음으로 미사에 참석했다. 나는 맨 끝 줄에 앉았지만 무릎을 꿇지도, 한쪽 무릎도 꿇지 않고 앉아서 지켜만 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40, 50, 60, 80 명, 나중에는 백 명에 가까운 일반인들이 들어오더니 정중하게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고 자리로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잠시 후, 종이 울리자 모두 일어 섰고 미사가 시작됐다. 그런 장면을 처음 보았지만 말씀의 전례는 정말 풍요로웠다. 그날은 주일도 아니었는데도 성경봉독뿐 아니라, 우리가 주일 예배 때 하는 것보다 성경을 더 많이 읽었다. 미사 중의 기도는 모두 성경에 있는 에제키엘과 이사야서 말씀이라서  나는 그 말씀 안에 푹 잠겼다. 그리고 앉은 채  마음속으로 말했다. “이건 뭐야, 이제 쇼좀 그만하라고, 내가 당신들 기도를 설명해 볼께, 그 말씀은 ‘에제키엘과 즈가리야’ 잖아, 와우! 정말 이건 성경이 생명을 지니고 살아 나와서 제대에서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잖아,  이건 내가 속한 곳인데” 



“ 오, 나의 주, 나 의 하느님!” 

     그 다음 성찬의 전례가 시작됐다. 나는 사제가 성체를 축성하고 거양할 때  발음하는 단어들 을 주의깊게 들었다. 내가 분명하게 고백하건 데, 거양된 성체를 바라보는 그 순간 그동안 내가 가톨릭 교회에 가졌던 모든 의심이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 오, 나의 주, 나 의 하느님!” 이라고  신앙고백을 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성체를 모시기 위해 줄을 지어 가는 것을 보면서 간절히 기도했다. “주님, 당신은 나의 구세주이시며 주님이십니다. 저는 성체안에 계신 당신을 간절히 원합니다. 부디 제안에 오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을 제 몸에 모시고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주소서. 영혼속에도 당신을 찬미하는 거룩한 성찬식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미사가 끝나자 사람들은 1~ 2분정도  잠시 머물면서 기도하고 갔다. 성당을  나오 면서 내가  한 기도을 생각하며 대해 무척 놀랐다. 그러나 다음 날도, 다음 날도 나는 매일 미사에 참석했다. 그렇게 몇주가 지났을 때, 나는 복된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의 현존하심과 사랑에 푹 빠져 있었다. 그 것은 내  매일의 삶에서 원천이고 최고였으며  삶의 절정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누구에게도, 심지어 사랑하는 아내 킴벌리에게 조차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게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그동안 수 백 권의 책을 읽었다며 말했다. “스캇, 레슬리와 나는 1986년 부활절에 가톨릭 교회에서 세례를 받기로 했어.”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말했다. “잠깐만, 지금 뭐라고 말했지?  게리, 넌 나를 가톨릭에서  구해야 할  사람이잖아! 그런데 나를 제치고 네가 먼저  성찬식을 하다니? 이건 불평등한 거야!” 게리는 말했다. “스캇, 네가 아직도 반대하는 것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모든 질문들에 대한 답을 받았어.“  “게리, 나도 마찬가지야.”  “스캇, 우리는 더 이상 캐묻 지 않을 거야.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 게리의 전화를 끊고 나는 순명을 연기하는 것은 큰 불 순명이라고 느꼈다.


   하느님께서 성경에서 성모님과 교황에 대해 분명히 말해주셨다. 고린도 전서 3 장 15 절에서 연옥에 대한 것도 명확히 해주셨으며, 성인들 을 하느님의 가족으로서 예수님안에서 내 형제자매로 주셨다는 것도 분명히 말씀하셨다. 나는 친구에게 하느님의 가족이 된다는 것이 모든 가톨릭 교회의 신앙 을 총괄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성모님은 우리의 어머니이시고, 교황님은 영적 아버지이시며, 성인들은 형제자매와 같다는 것을, 성체는 하느님의 가족들이 먹는 음식이며, 축일은 기념일이나 생일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고아가 아니고, 하느님의 가족인데… 나에겐 돌아가야 할 집이 있음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하느님께 여쭈었다. “하느님,  당신은 제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시나요? 게리는 가톨 교신자가 된다는 데. 당신은 제가 어떻게 하길 바라시나요?” 그 때 하느님께서 물으셨다. “스캇, 내가 너에게 어떻게 해 주면 좋겠니?“ “하느님, 쉬워요. 저는 집에 가고 싶어요. 그리고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간절히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원하는 것을 못하게 막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해줄 수 있는 분을 찾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킴벌리, 게리와 레슬리가 무슨 결정했는지 당신은 정말 모를거야” 하자 “무얼요?” 하고 물었다. 그녀는 이미 나에 대한 희망을 버린 상태였다. 

      
      “두 사람이 1986년 부활절에 가톨릭 교회 신자가 된다는데?” 그녀는 다 알면서도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 눈길로 물었다. ”그래서요? 그게 무슨 차이가 있어요, 당신은 1990년까지는 가톨릭으로 개종하지 않겠다고 나에게 약속했잖아요?” “킴벌리, 맞아, 내가 약속했지, 그렇지만 당신이 다시 생각해줄 수 있다면...” “오... 스캇, 제발… 안돼요, 안돼요.” “킴벌리, 당신이 그 문제에 대해 기도해 줄 수 있겠어?” ”스캇, 자신이 한 약속을 제발 영적인 문제로 돌리지 말아요...”  “킴벌리, 당신이 이 일에 대해 듣거나 말하고 싶어 하지도 않고 더구나 의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걸 잘알아, 하지만,  나는 하느님께서 분명하게 가르쳐 주시는 것을  지연시키는 것은 큰 불순명으로 느껴져...” 나는 킴벌리가 나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하느님께 불순명하게 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스캇, 시간을 주세요. 그 문제에 대해 기도해 볼께요. 그러나 나는 당신에게 배신당하고 버려진 심정이예요. 당신, 알고 있어요? 내 삶에서 지금처럼 혼자가 되어버린 같은 적은 없었어요. 이것 때문에 내 모든 꿈이 죽어 가고 있어요.” 그러나 그녀는 나를 위해 기도했고 하느님은 그녀를 축복해 주셨다. 어느 날, 킴벌리가 말했다. “이건 내 인생과 우리 결혼 생활 중에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나는 하느님께서  당신이 원하는 일을 하도록 부르신다고 생각해요.” 



나는 네가 사랑 때문에 가톨릭 신자가 되기를 바란다. 

     1986년 부활 전야,  나는 성사적인 그랜드 슬램이라고 부르는 조건적인 세례(개신교에서 세례를 받았기 때문)와 첫 고백성사, 그리고 하느님을 거양하는 거룩한 성찬식에서 첫영성체를 하는 부활전야 미사에  참석했다. 그러나 킴벌리는 집으로 돌아 오면서 울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꼭 안아 주면서 함께 기도했다.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아라, 나는 네가 킴벌리의 사랑을 거스르며 가톨릭교회 신자가 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네가 그녀를 사랑하는 것보다 내가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는 네가 사랑 때문에 가톨릭 신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너는 그녀의 마 음을 바꿀 수가 없으며, 내가 바라는 만큼 그녀를 사랑할 수 없다. 성령의 힘을 믿어야 한다. 때가 되면 거룩한 성체 안에서 내가 너에게 사랑의 힘을 주겠다.” 나는 하느님의 말씀에서 큰 평화를 체험했다. 그리고 킴벌리가 진심으로 나를 이해하고 받아 줄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그로부터 몇 주와 몇 달이 지나는 동안 킴벌리는 나에게 아무 관심도 주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그렇게 있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그 동안 우리는 졸리엣에서 몇 년간 대학에서 가르치는 새 직장을 찾았다.


       하느님께서는 이사가기 전에 우리에게 셋째 아기를 주셨다. 킴벌리가 임신 4개월쯤 되었을 때 우리는 특별한 두려움을 체험했다. 아내가 다니는 교회에 참석하여 마지막 성가를  부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얼굴이 백지장처럼 된 아내가 나한테 기대며 말했다. “배가 아파요… 하혈을 할 것 같아요” 예배가 끝나고 사람들이 나가자 킴벌리는 배를 움켜잡고 의자에 누워 버렸다. 나는 너무 놀라서 당황하며 공중전화로 달려가서 산부인과 의사에게 전화했다. 직원이 말했다. “우리는 닥터 매미언이 어디 있는지 몰라요, 주말이라 여기 없을 거예요. “ “킴벌리가 많이 아파요. 그분께 연락을 취해 주시겠어요?” “네, 통화되면 당신에게 연락하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고 너무 당황해서 성 제랄드와 모든 성인들을 부르며 간절히 도움을 청했다.  예수님께 도와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10초쯤 지나서 전화벨이 울리자 달려가서 전화를 받았다. 


     의사는 “당신은 지금 어디 있나요?” 내가 도시 밖에 있는 교회 이름을 알려 주자  그는 “지금 교회 어디에 있다구요?” 하고 물었다. “예배실 밖 공중 전화 부스 안에 있어요." “믿을 수가 없군요. 나는 오늘 아침 이 교회를 방문하고 있었고 지금 지하실에서 전화하는 겁니다. 바로 올라 갈께요.” 10초도 안돼서 계단을 뛰어 올라 온 의사는 킴벌리를 진찰한 후, 차에 태워 성 죠셉 병원으로 데려가 주었고 킴벌리와 아기의 생명을 구했다. 딸 해나는 그렇게 태어났다. 나는 그일을 계기로내 생각보다 더 심하게 상처 받고 있는 우리 결혼생활에 하느님께서  아주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깨닫고 기도했다. “우리 아기를 어떻게 해야하지?” 하고 물었을 때 킴벌리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하느님께서 이 아기를 화해의 선물로 우리에게 주셨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게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서로 꼭 안고 같이 기도했다. 

     해나가 태어난 후 킴벌리가 나에게 말했다. “스캇,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해나는 가톨릭교회에서 세례를 받아야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는 깜짝 놀라서 다시 물었다. “킴벌리, 지금 뭐라고 했어?”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마음이 그래요.” 우리는 해나의 세례식에 함께 참가 했고 나에게 세례성사를 주신  브러스키 위츠 몬시뇰께서 (현 링컨 교구의 주교) 유아 세례식을 전통과 성경에 가득 찬 거룩한 전례로 진행해 주셨다. 전례가 반쯤 진행됐을 때 몬시뇰이 “알렐루야, 알렐루야” 하고 전례기도를 하자 킴벌리가 “알렐루야” 하고 따라 하다 “오, 죄송해요.” 하자 몬시뇰은 “아닙니다. 모든 가톨릭 신자가 그렇게 했으면 좋겠어요. 참 좋아요.” 세례성사가 끝나자 아내는 해나의 세례증서를 사진으로 찍어서 부모와 친구들에게 보냈다. 그러나 킴벌리는 나와 대화할 마음이 없었다. 책을 읽고  공부하는 그녀를 보고 나는 시간을 갖고자 노력했다. 




 로마 바티칸 방문
Trip to the Vatican in Rome

작년 1990년 12월, 나에게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가르쳐 주신 아버님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그리고 1월에 장인께서 동유럽쪽에서 극심한 포르노와 투쟁하는 소그룹의 사람들과 함께 바티칸 학회에 참석하고 교황 바오로 2세의 개인 알현을 한다며 함께 가자고 초대하셨다. 장로교 목사인 장인께서 교황을 만나시는데 나를 초대하시니, 당연히 좋다고 대답했다. 작년 1월에 그룹과 함께 교황님을 뵈었을 뿐 아니라 금요일 아침 7시에 교황님의 개인 경당에서 봉헌하는 미사에 초대를 받았다. 교황님과 불과 몇피트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있었기 때문에  교황님이 기도하시는 직접 모습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여러분도 그곳에 함께 계셨다면 머리를 손으로 감싸고 교회의 모든 무거운 짐을 당신의 가슴에 담고 기도하시는  교황님의 모습에서 그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느꼈을 것이다. 

     나는 성찬식을 거행하시는 교황님을 뵈면서  앞으로 매일 미사 중에 더 깊이 그분을 위해 사명 을 갖고 기도하겠다는 두 가지 결심을 했다. 그러나 두 번째 결심은 그리스도안의 형제 자매들과 함께 교 황님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복되신 성모님을 우리의 영적 어머니로 주신 예수님께서 교황 바오로 2세 를 우리의 영적 아버지이시며, 안내자로 보내주셨다. 하느님께서 구세주이신 그리스도안에서 형제자매들 과 함께 나누고 진심으로 감사드려야 하는 것은 우리가 천상 아버지를  깊이 사랑하고  흠숭할 수 있도록 성인 성녀들을 한 형제자매로 함께 이끌어 주시어, 우리를 하느님의 가족으로서 인식할 수 있는 은총을  주신 것이다.  또한 더 중요한 것은 거룩한 성체를 통 해 우리가 하느님의 가족으로서 그분의 자녀로서 함께 식탁에 둘러 앉아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아, 하느 님께서는 얼마나 엄청난 은총을 우리에게 주고 계신지요!  


< 평화의 모후 선교회 발행' 평화의모후' 제 74호에서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