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당신 마음에 드는

사제가 될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 


백운택 신부 (살레시오회)


가장 바쁘다는 연말에 RYC Center와 공동체를 비우고 메주고리예 순례길에 오른다는 부담감이 나를 무겁게 짓누르는 감정을 뒤로하고 12월 27일 오후 공항으로 향했다. 날씨도 나의 마음을 이해하는 듯 찌뿌득하고 기온도 쌀쌀한 늦은 오후였다. 다행이도 나를 공항까지 데려다주고 말동무가 되어주신 동료신부님 덕분에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나의 걱정들을 안심시켜 주시고 농담으로 내 마음을 풀어주시어 웃음으로 ‘10일간의 메주고리예 순례’라는 장도에 오를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셨고 영적으로 함께 동행해 주셨다. 



공항에 도착하자 나보다 먼저 순례단을 기다리는 자매님이 계셨고 곧이어 다른 순례단원들이 도착하셨다. 모두 다 메주고리예를 처음으로 가보는 순례자들이라 상상력이 풍부했다. 우리가 타야 할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각자 이것저것 주어들은 이야기들로 웃음꽃을 피울 수 있었다. 이렇게 같은 초행자들을 만나고 서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성모님께서는 나에게 평화를 주셨다. 나는 이미 세상의 것들로부터 초월하고 있었던 것이다. Croatia의 Split에서부터 메주고리예까지의 2시간 반 정도는 버스로 이동했다. 


밤길이었지만 보름달에 비추어 눈앞에 덩실 펼쳐져있는 아드리아 해안(The Adriatic Coast)은 태초부터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그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유난히도 맑고 푸른물 그리고 가공건물들이 부족하기에 섬들과 더욱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순수한 자연’을 그려내고 있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그 그림 위를 달리는 우리 순례단은 환상의 세계에 도취되어 피곤함도 잊어버리고, 한순간의 아름다움도 놓치지 않기 위해 차 창가에 바싹 붙어 앉았다.


이러한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남 그레고리오 형제님께서는 이 지역의 역사적 사건들과 더불어 자세한 설명을 들려주셨다. 새벽을 기다리는 파수꾼처럼 밤길을 재촉하며, 우리 순례 단은 한걸음 한 걸음 우리를 기다리시는 메주고리예 성모님의 품으로 더욱 가까이 향했다. 메주고리예는 작고 소박한 마을이었다. 마을 전체는 산으로 둘러 쌓여있고, 그렇게 많지 않은 집들, 비좁은 도로, 가끔씩 눈에 들어오는 채소밭 그리고 성 야고보(St. Jacob) 성당.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질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내가 어렸을 때 성장하고 뛰놀았던 동네 같은 포근함이 있었고, 항상 꿈속에서 동경하던 평화로움과 자유가 있는 작은 동네같은 곳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주일 이상 이곳에 머무는 동안,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 록 메주고리예는 나의 마을이 되었고 나는 이 마을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작고 소박한 마을, 메주고리예서 많은 영적 체험을 갖을 수 있었다. 


성 야고보(St. Jacob) 성당에서의 미사, 묵주기도 그리고 성시간 성모님의 발현산과 십자가산 체나콜로 공동체 (The Cenacolo Community) 및 프란치스코회 순교자 성당 방문 등등. 그리고 크게 두 가지 영성적 교훈을 재확인 할 수 있었다. 순례단과 함께 솟구치는 뜨거운 신앙의 열정 그리고 성모님께 달려가고 싶은 끝 없는 신앙적 충동이 내가 경험한 영적체험이다. 끝없는 찬양과 끊임없는 기도로 토해내는 순례자들의 신앙의 열정에 나도 함께 묻혀버렸던 것이다. 


순례자들과 함께 찬양과 더불어 기도할 때는 성모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우리 모두가 온 정열을 다해 사랑할 수 있도록 신앙의 불길을 부어주시는 듯 했다. 그리고 이미 성모님의 품에 안겨있는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넘치는 성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성모님의 품안에서 기도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평화로운 나의 모습이었다.


메주고리예에서 재확인할 수 있었던 두 가지 영성적 교훈은 성모신심과 성체신심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성모님의 발현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메주고리예의 전반적인 관심과 영성의 중심은 당연히,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성모님에 대한 확고한 신심이다. 매일 저녁 5시면 동네사람들과 순례자들은 성 야고보(St. Jacob)성당에 모여 미사가 시작되는 6시까지 함께 묵주기도를 바친다. 성시간까지 하면 3시간이 걸리는 이 시간은 사제인 나에게도 은혜로운 시간이었다. 


나는 신학생 시절에도 매일 묵주기도를 바쳤다. 저녁 식사 후에 수도원 안에 있었던 작은 호수를 돌며 “하느님, 당신 마음에 드는 올바른 사제가 될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 라고 기도하며 성모님께 매달렸었다. 성모님께서는 간절히 매달리던 나의 애절한 간구를 물리치시지 않으셨다. 내가 입회했던 그 해에 신학교에 입학한 신학생이 총 26명이었는데, 그 중에 유일하게 나만 사제서품을 받았다. 


이러한 나에게 메주고리예 순례 중 성 야고보(St. Jacob) 성당에 모여 바치는 묵주기도는 의미가 특별했고 성모님께 드릴 수 있는 감사의 시간이었다. 동네 사람들과 순례자들은 성체신심 또한 독실한 사람들이다. 미사가 끝나면 거의 매일 한 시간씩 시작부터 끝까지 무릎을 꿇고 성체 앞에 모여 기도하며 하느님을 찬양한다. “무엇이 이 사람들을 이토록 강하게 그리고 강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일까?” 라고 스스로 질문해 본다. 


물론, 성체의 힘이다.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당신을 찾는 모든 영혼들에게 당신 안에 머물 수 있는 충분한 힘과 인내를 허락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아오스팅 성인께서는 고백록에서 “아, 이제야 알았습니다. 하느님, 당신께서 항상 나와 함께하고 계셨다는 것을, 하지만 나는 당신을 찾고 있지 않았었다는 것을!” 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나는 지금 살레시오 수도회 뉴욕관구에서 한인 청소년 사목 전담사제로 사목하고 있고 관구 내 아시안 청소년 사목의 기틀을 다지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더불어 지난 4년 동안은 관구 내 신학생들의 영성지도와 교육을 담당했다.


메주고리예 순례 중 나에게 가장 좋았던 성시간을 보내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던 것은 ‘만약 내가 4년 전 메주고리예를 다녀갈 수 있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 까’ 라는 아쉬움이다. 4년 전 메주고리예 순례를 경험했었다면 신학생들에게 좀더 진지하고 거룩하게 성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메주고리예에서 얻은 신앙체험을 생활화해야 할 시간이다. 천주교 영성의 두 핵심인 성모신심과 성체신심을 내가 살아가는 매순간 삶 속에서 기도와 사랑으로 승화시켜 내영혼의 성화를 위해 노력해야겠다.


(평화의 모후 선교회 발행 '메주고리예' 25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