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안에서 새로 태어난 기쁨

 

Sr. Emmanuel

 

성모님의 발현 22주년을 기념, 이 기념일 날 성모님께서 “나는 너희들이 새 기쁨과 활력 속에서 나의 메시지를 더욱 새로이 받아들이라고 부른다. 기도가 너희들 매일의 삶 속에 생활이 되기를 바란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수녀님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아들을 위한 기도를 절대 멈추지 않았던 한 어머니의 삶이 바로 기도였다는 것을 말씀해 주셨다. 베니가 14살이었을 때,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죽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절망에 빠졌다. 그리고 15살 때에는 어느새 마약을 하는 알콜 중독자가 되었고 방화범이 되어 버렸다. (모든 친척들은 베니가 너무 창피해서 죽기를 바랐다고 한다.) 그녀는 주님께 아들의 회심을 위하여 기도에 매달렸다.  어느 날 그녀는 사제에게 말했다.


 

 “저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지금 독방에 감금되어 있습니다. 아주 절망적인 상태입니다. 신부님, 제 아들을 면회가 주시지 않겠습니까?” 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베니는 나중에 멧케나 수녀에게 “나는 교회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며 사제 만나는 것을 거부하 였습니다. 저는 저의 손목을 자르며 자살을 여러 번 시도하였으나,  제 자신이 이 깊은 구렁으로 계속 들어가고 있는 것을 이해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사랑하였기에  더 이상의 고통을 드리고 싶지 않아서 ‘사제를 데려다 주셔요.’ 하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제에게는 제가 잘 모르는 그 어떤 기쁨이 풍겼고 굉장히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그분은  제잘못에 대해서는 전혀 묻지 않고  “베니, 다시 오겠다.” 라고 하였습니다.



며칠 후, 그분은 다시 오셨고 “베니, 나는 너와 함께 기도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나와 함께 기도를?” 하며 당황했습니다. 신부님은 “너는 아무 말 안해도 돼. 내가 그냥 네 대신 예수님께 말해줄게.” 하셨습니다. 신부님은 두 손을 제 머리 위에 얹으셨을 때,  어떤 힘이 저의 몸 전체에 퍼졌습니다. 저는 이 평화로운 느낌이 없어질까봐 움직이고 싶지도 않았고 잠을 자고 싶지 않았었습니다. 제가 잠에서 깨였을 때 저는 고백성사를 보지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제 자이가 26살이고 14살부터 아버지 돌아가신 후 한번도 고백성사를 안 보았다는 것을 상상하실 수 있으셔요?”



베니는 그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본당 사제가 변장해서라도 면회오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사제라는 말을 하면 못 들어온다고 알려주면서 “나는 고백성사를 보고 싶습니다.” 라고 말했다. 베니는 이 고백성사를 통하여 씻겨지는 자신의 영혼에 대해 그는 너무나 아름다운 예수님의 자비를 체험한 것이다. 이 기간에 베니는 성서를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만나려고 노력하였다. 그가 다른 감옥소로 옮기기 전이면 잠시 동안의 몇 시간의 자유 시간을 허락 받을 수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는 성체가 모셔져 있는 수도원을 찾아가 성체 앞에 조용히 앉아 있다가 다시 감옥소로 돌아가곤 하였다. 그리고 시간만 나면 경당에 들어가 성체 조배를 하면서 예수님과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께서, “베니, 나는 네가 사제가 되기를 바란다.” 하고 말씀하시는 소리를 들었다. 베니는 “사제요? 어떤 주교가 저 같은 자를 받아주겠습니까?” 하였다. 그는 덴마크에서 가장 유명한 범죄자가 아닌가!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내가 받아주겠다. 그러니 한번 노력해 보아라.”라고 하셨다. 그는 주교님을 찾아 만나보았다. 주교님은 그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는 하나도 언급하지 않으시면서 “베니, 너는 아직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먼저 학교 교육을 다 마치고 다시 나에게로 오너라.” 하시는 것이었다. 베니는 학교를 마치고 다시 주교님을 만났으며 주교님은 그를 영국에 있는 신학교에 보냈다. 베니는 이곳에서 가톨릭 사제 서품을 받았다.



멧케나 수녀님은 “우리가 덴마크에 갔을 때 우리는 베니를 만났습니다. 정말 가족의 수치스런 존재였던 사람이 이제는 가장 앞자리를 걷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에게 작은 성광을 보내 드렸는데 그는 그 본당에 늘 성체현시를 해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그곳에 갔을 때, 그 성당만 유독 메주고리예 저녁 프로그램이 매일 저녁 진행되고 있었고 성모님이 지시하신 것들이 시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개신교 신자들도 그분의 성당에 와서 함께 기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고 말해주었다. “우리가 베니 사제가 계신 본당에 갔을 때, 함께 있었던 아주 잘 생긴 젊은 사제에 대하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의 이름은 마르코이고 모스코바에서 마르크스와 레닌 주의자의 교육을 받음으로서 스파이로 일하도록 다시 덴마크로 보내졌습니다. 그의 부모들은 공산주의자들이었고 그는 하느님에 대해서 들어 본 적도 없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유고슬라비아에 있는 해변가에서 햇볕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마르코, 일어나라!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거라. 나는 네가 천주교인이 되고 사제가 되기 바란다!” 하는 천둥같은 내적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는 집으로 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제가 무엇인지 몰랐고 천주교가 어디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간신히 천주교를 찾았고 3주가 걸려서야 본당 사제를 만났습니다. 영세를 받고 마르코는 학교 교육을 많이 받았기에 즉시 신학교로 보내졌습니다. 그 신학교가 바로 베니 사제가 있던 곳입니다. 그리고 둘은 같은 공동체에 파견되었습니다.  마르코가 사제서품을 받기 전에 편지를 받았습니다. 이 아저씨는 천주교로 개종하여 모든 친척들로부터 버림을 받으신 분입니다.

 

그 분은 가족들을 위하여 기도에만 전념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 늙으신 분에게 그의 조카가 사제 서품을 받는다는 소식을 전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어느 날 저녁 이 공동체에 갔습니다. 우리는 베니 신부님과 마르코 신부님이 경건하게 무릎을 꿇고 성체 현시를 해 놓고 신자들로 꽉 찬 성당에서 메주고리예 프로그램과 하느님의 자비 기도를 이끄시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사제들에게 본당을 이끌라고 허락하는 것은 자유스런 공통된 것이지만 사제들이 어떻게 신자들을 이끄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두 성소는 그 가족중에 누군가 기도를 삶의 습관화로 했기 때문에 얻어진 수확입니다.”


< 2003년 9월 평화의 모후 선교회 발행 '메주고리예' 제19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