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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내지 하느님 나라는 실상이고 존재 그 자체고 신비다.

하여 우리의 직접적 경험을 통해  하느님 나라 그 자체를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실재적이라기보다는 논리적이고 법적인 존재로서 요청된다.

물론 당연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그 반대의 극에 하느님을 완전히 배제한 인간 세상 그 자체를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허상 그 자체이고 이 또한 하나의 신비다.

 허나 그런 세상도 실은 실재한다기보다는 법적이고 논리적 차원에서 상정되는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과 이 세상은 실상임과 동시에 허상이고,

실상과 허상을 함께 머금고 있다.

대단히 중요한 것은 바로 여기에 참된 존재가 있고, 참된 진리가 있고, 참된 생명이 있다는 사실이다.

실상과 허상이 함께 휘독고 있는 바로 우리 자신 내지 바로 이 세상에 말이다.

실상 그 자체인 곳에 진리가 깃들지 않고 오히려 허상을 머금은 곳에 진리가 깃들어 숨 쉬고 있다는,

이 진리 말이다.  여기서 실상은 허상이 거짓된 것이라 하여 배척하지 않는다.


허상도 실상이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것이라 하여 내치려 하지 않는다.

실상은 허상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고, 허상은 실상을 받아들여 가슴속 깊이 품고 있다.

실상과 허상이 서로를 감싸고 품어 안고 있는 이 모습, 실상과 허상이 서로를 초월해서

이뤄내고 있는 이 자리, 실상과 허상이 간격과 거리를 두고 있는 그곳에서 피어오르는 이 생명,

이 진리가 너무나 소중하다. 이 진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정말 따뜻한 가슴이 열리고

따뜻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고 기쁨과 생명이 솟구침을 느낀다.


하느님과 인간의 모습도 바로 이렇고, 선과 악의 모습도 바로 이렇고, 깨달음과 무지도 바로 이렇다.

거룩하고 아름다운 하느님이 삿되고 추악한 인간을 따뜻이 감싸고 있고,

그런 인간은 또 그런 하느님을 가슴속 깊이 맞아들여 품고 있다.

선은 악을 따뜻이 감싸고 있고 악 또한 선을 깊이 맞아들여 품고 있다.

깨달음은 무지를 따뜻이 감싸고 있고 무지 역시 깨달음을 가슴속 깊이 핵처럼 품고 있다.

예수님이 참으로 중요해지는 게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어렵게 이야기해서 신성과 인성을 겸비한 분이라고 이야기하지만,

하느님에 의해 인간이 어떻게 감싸여져 있고

인간이 어떻게 하느님을 품고 있는지를 당신 존재를 통해 드러내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인간 존재의 본디자리를 드러내 보여주신 것이다.


하늘과 땅을 내포하며 추월하고 하느님과 인간을 내포하며 추월한, 생명의 자리 참된 존재의 자리,

바로 그 자리에 예수님이 우뚝 서 계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을 떠나 따로 하느님 나라를 찾아가야 할 것이 아니다.

하느님 나라를 이뤄내야 할 모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따로 존재의 변화를 일으켜 하느님 나라 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한다면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하느님 나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고

심지어는 하느님 나라를 배척하는 것이 될 터이다.


바로 지금 이 자리, 지금의 나를 비롯한 동료 인간들의 모습, 지금의 이 세상, 이 존재들과 이 모습들이

 바로 하느님 나라요 참된 진리요 우리의 행복이요 생명이다.

이 세상이 참으로 귀하고 소중한 것으로 다가오지 않는가,

우리의 가족들, 우리의 살림살이, 우리의 마을과 사회 조직, 우리의 문화가 너무 귀하고 아름답지 않은가,

참으로 아름답고 귀하게 가꿔내야 할 것들 아닌가,

서로가 서로를 따뜻하게 감싸고 품고 있는 이 곳, 바로 이자리 이 모양에서야말로

참으로 온전하고 올바른 생명을 키워내기 위한, 기쁨에 찬 땀방울을 흘리려고 들지 않겠는가.

 

그러다 보면 내 진리의 정당성과 순수성을 고집하기 위해 다른 이들을 죽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 하에, 미소는 사라져 버린 채 심각하고 근엄한 얼굴로

일에만 몰두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가슴이 설렌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우리 애들 열두 명은 신나라 하며 김밥 싸들고 산으로 갔다.

추울 텐데, 감기 걸리지 않아야 할 텐데.

애들이 보고싶다.   하느님 나라가 보고 싶다.

 

                                               '없는 것' 마저 있어야     유시찬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