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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님의 2015년 6월 기도 지향
 

일반 기도지향
 
이민과 난민: 이민과 난민들이 그들이 도착한 나라에서 환대와 존중을 받도록 기도합시다.
 
작년의 제100차 세계 이민의 날에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이민과 난민, 더 나은 세상을 향하여”라는 제목의 담화문을 발표하셨습니다. 이 담화문에서 교황께서는 이민과 난민들이 그들이 도착한 나라에서 환대와 존중을 받아야 할 것을 역설하십니다. 교황님에 따르면, 그들이 그러한 환대와 존중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그들 역시도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하느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인간 존엄을 이루는 바탕은 효율성과 생산성, 사회 계층, 인종적 또는 종교적 소속이라는 기준에 있기보다는, 인간이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에, 더 나아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민과 난민에게서,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환대하고 존중하고 사랑해야 하는 형제자매를 알아보아야 하고, 다른 이들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사실 우리 주 예수님의 선조들과 성가정은 이집트로 피신했던 난민들이었습니다. 특히 성가정의 난민 체험은 예수님의 미래의 공생활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우리는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민과 난민은 우리가 더욱 정의로운 사회, 더욱 완벽한 민주주의, 더욱 단결된 나라, 더욱 형제적인 세상, 그리고 복음에 따라 더욱 열린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데에 이바지하도록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마련해 주신 기회”라고 하신 교황님의 말씀은 예수님의 삶에 비추어 볼 때 분명히 옳은 말씀입니다.
 
교황께서는 이렇게 역설하십니다: “이민과 난민은 인류라는 장기판 위에 놓인 졸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민과 난민들이 그들이 도착한 나라에서 정당한 환대와 존중을 받게 되도록 교황님과 함께 열심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들도 하느님의 자녀이고, 예수님도 난민이셨기 때문입니다.
 

성찰: 여러분은 주위의 여러 이민자들, 특히 여러 아시아 국가에서 생계를 위해 이주해 온 이들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도하고 행동하시는지요?

 
성경: 탈출 22, 20 ; 너희는 이방인을 억압하거나 학대해서는 안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다.
 

 
선교 기도지향
 
성소: 많은 젊은이들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자신의 삶을 사제직이나 봉헌 생활에 바치려는 열망을 품도록 기도합시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작년의 제51차 성소 주일에 “성소, 진리의 증언”이라는 제목의 담화문을 발표하셨습니다. 이 담화문에서 교황께서는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특별히 강조하셨습니다: “...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1코린 3,23).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께 속하는 방식을 알 수 있습니다. 곧, 우리는 예수님과 이루는 유일무이하고 인격적인 관계를 통하여 하느님께 속하는 것입니다. 이 관계는 세례성사를 통하여 우리가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날 때에 맺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 말씀으로 우리에게 끊임없이 다가오시는 분은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마르 12,33) 당신을 사랑하며 신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성소는 가는 길은 서로 다를지라도 자신을 벗어나 그리스도와 복음을 삶의 중심에 둘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혼인 생활을 하든, 봉헌 생활을 하든, 사제 생활을 하든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는 사고 방식과 행동 방식을 극복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과 이루는 유일무이하고 인격적인 관계를 통하여 하느님께 속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모든 성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바닷물에는 3% 정도의 소금이 녹아있다. 물에 녹아있는 소금이 비록 3%에 불과하지만 그 소금이 제 역할을 다 하면 그 바닷물은 결코 썩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교회에서, 사제직과 봉헌 생활이 필요한 이유도 바로 이 “세상의 소금”(마태 5,13) 역할을 그들이 하기를 주님께서 바라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소금의 역할을 다 해서 세상과 교회가 썩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예수님과 이루는 유일무이하고 인격적인 관계를 통하여 하느님께 속하는 것”이 필수적인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예수님과 그러한 인격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게 된다면 그들 역시도 소금으로서의 맛을 잃어버린 채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마태 5,13)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젊은이들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자신의 삶을 사제직이나 봉헌 생활에 바치려는 열망을 품도록, 그래서 그들이 “세상의 소금”의 역할을 충실히 해 낼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열심히 기도합시다.
 

성찰: 여러분은 주위의 젊은이들에게 사제, 수도 성소를 추천해 본 적이 있으신지요?
 
성경: 2열왕 2,21 :  엘리사는 물이 나오는 곳에 가서 거기에 소금을 뿌리며 말하였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이 물을 되살렸으니, 이제 다시는 이 물 때문에 죽거나 생산력을 잃는 일이 없을 것이다.”

< http://club.catholic.or.kr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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