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14세 교황님 첫 일반 알현 미사 강론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저의 첫 일반 알현 미사에 여러분을 맞이하게 되어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하신 말씀처럼, 예수님의 비유에 대해 계속 묵상합니다. 이 비유들은 하느님께서 어떻게 역사 안에서 일하시는지를 보여주며 우리에게 희망을 되찾게 도와줍니다.

 

오늘은 모든 비유의 서문과도 같은, 조금은 특별한 비유 하나에 머물고자 합니다. 바로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복음 선포 방식, 곧 오늘날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 배워야 할 많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일상에서 따온 이야기지만, 단순한 이야기 그 너머의 깊은 뜻을 전하고자 합니다.

 

비유는 우리 안에 질문을 일으키며, 겉모습에 머물지 말고 깊이 성찰하라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나는 이 이야기 속 어디에 있지?’ ‘이 이미지가 나의 삶에 어떤 말을 걸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이죠. ‘비유’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파라발레인’에서 유래한 것으로, 앞에 던지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즉, 비유는 우리 앞에 도전적인 말씀을 던져 우리를 성찰하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바로 하느님의 말씀과 그 말씀이 우리 안에서 어떤 열매를 맺는지를 보여줍니다. 복음의 말씀은 마치 우리의 삶이라는 땅에 뿌려지는 씨앗과도 같습니다. 예수님은 자주 씨앗의 이미지를 사용하시며 여러 가지 의미를 담아 설명하십니다. 마태오 복음 13장에서도 이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시작으로 여러 작은 비유들이 이어지며, 그 중 일부는 땅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룹니다. 밀과 가라지, 겨자씨, 밭에 숨겨진 보화 등입니다.

 

그렇다면 이 ‘땅’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로 우리의 마음이며, 동시에 세상, 공동체, 교회를 뜻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모든 현실을 열매 맺게 하고 도전합니다. 이야기의 시작에서 예수님께서 집을 나서자 많은 무리가 모여듭니다. 그분의 말씀은 사람들을 사로잡고 궁금증을 불러일으킵니다. 그 무리 안에는 다양한 상황에 처한 이들이 섞여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모두를 향하지만, 각 사람 안에서 다르게 작용합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우리는 비유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씨 뿌리는 사람은 다소 엉뚱하게도 씨앗을 아무 데나 뿌립니다. 길 위에도, 돌밭에도, 가시덤불 사이에도 말입니다. 이 모습은 듣는 이들을 놀라게 하고 왜 그런지를 되묻게 합니다. 우리는 늘 계산하고 따지지만, 사랑 안에서는 계산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사랑하실 때 아낌없이 흩뿌리십니다. 이처럼 마구 뿌리는 농부의 모습은 바로 하느님의 사랑 방식입니다. 물론 씨앗의 운명은 땅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러나 이 비유에서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것은, 하느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우리의 어떤 상황 속에도 아낌없이 뿌리신다는 점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피상적이고 산만하기도 하며, 때로는 열정에 휩싸이다가도 걱정에 눌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을 열고 말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 때도 있습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희망을 두고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완벽해지기를 기다리기보다, 항상 그분의 말씀을 너그럽게 주십니다. 어쩌면 그분이 우리를 신뢰하신다는 그 사실을 통해 우리도 더 나은 땅이 되고자 하는 바람이 생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자비와 너그러움 위에 세워진 희망입니다. 씨앗이 열매를 맺는 방식에 대해 말씀하실 때, 예수님은 자신의 삶도 말하고 계십니다. 예수님 자신이 바로 말씀이며, 씨앗이시며,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죽어야 하는 존재이십니다. 이 비유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시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죽음조차 감수하신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저는 이 말씀을 들으며 고흐의 ‘해질녘의 씨 뿌리는 사람’이라는 아름다운 그림이 떠오릅니다. 태양 아래 씨를 뿌리는 농부의 모습은 그 수고로움과 함께, 그림 뒷편에 이미 익은 곡식이 그려진 것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씨앗은 결국 열매를 맺었습니다. 어떻게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그림의 중심에는 농부가 아닌, 장면 전체를 밝히는 태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는 때때로 하느님께서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역사를 움직이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심을 상기시켜줍니다. 땅을 데우고 씨를 익게 하시는 분은 바로 태양, 곧 하느님이십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 삶의 어떤 상황 안으로 하느님의 말씀이 들어오고 있습니까?

 

우리는 그 씨앗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해야 합니다.

혹 우리가 열매 맺지 못하는 땅임을 깨닫게 되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더 나은 밭으로 만들어 주시기를 다시 한 번 청합시다.

 

감사합니다.

 

아멘.

 

레오 14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