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레오 14세

제9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위한 교황님 메시지

“주님, 당신은 저의 희망이십니다.” (시편 71,5)

이 시편 말씀은 많은 고통 속에서 짓눌린 마음에서 흘러나온 고백입니다. “당신은 나에게 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게 하셨습니다”(20절). 그러나 시편 기자의 영혼은 여전히 열려 있고 굳건한 신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변함없는 믿음 안에서 하느님의 도우심을 체험하였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피난처, 구원의 요새가 되어 주소서”(3절). 바로 여기서부터 확고한 희망이 자라납니다. “당신 안에 피신하오니,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소서!”(1절). 삶의 시련 속에서도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에 부어진 하느님의 사랑이 희망을 살아있게 하며 우리를 일으켜 세웁니다. 그래서 이 희망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로마 5,5 참조). 바오로 사도는 디모테오에게 이렇게 씁니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느님께 희망을 두었기에 수고하고 애쓰는 것입니다”(1디모 4,10). 그분은 바로 “희망의 하느님”(로마 15,13)이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의 희망”(1디모 1,1)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이 희망 안에서 구원받았고, 이 희망에 굳건히 닻을 내려야 합니다.

 

가난한 이들은 바로 이 희망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삶은 포기와 연약함, 소외라는 고통 속에 있지만, 오히려 그 자리에 하느님을 향한 깊은 희망이 피어납니다. 세상의 권력과 재물을 의지하지 않기에, 그들은 하느님만을 유일한 희망으로 받아들입니다. 우리 역시 이 세상적이고 덧없는 희망들에서 벗어나 참된 희망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땅에 보물을 쌓지 마라. … 오히려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에는 좀도 녹도 없고 도둑도 없다”(마태 6,19-20). 하느님을 동반자로 삼는 삶을 시작하면, 세상 재물의 중요성은 줄어들고 진정한 보화가 드러납니다.

 

가장 심각한 가난은 하느님을 모르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복음의 기쁨』에서 강조하셨듯이, “가난한 이들이 겪는 가장 큰 차별은 영적인 돌봄의 결핍”(200항)입니다. 대부분의 가난한 이들은 신앙에 대해 특별한 열림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갈망합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하느님의 우정과 축복, 말씀과 성사에의 참여를 제공할 때, 그들은 신앙 안에서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습니다. 요한 사도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한다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1요한 4,20). 이것이 곧 믿음의 규칙이요, 희망의 비밀입니다. 세상의 풍요로움과 쾌락은 마음을 결코 충만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도리어 사람을 하느님 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믿게 만들며, 이는 인간에게 가장 위험한 빈곤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당신의 모든 희망을 하느님께 두십시오. 당신 안에 공허함을 느끼십시오. 그래야 하느님께서 그 자리를 채워주십니다. 그분 없이는 어떤 것을 가져도 오히려 더욱 공허할 뿐입니다.” (시편 주해, 85편)

 

참된 희망은 인간의 능력이 아닌, 하느님의 약속에서 오는 확신입니다. 초대 교회 신자들은 ‘닻(anchor)’을 희망의 상징으로 삼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죽음과 부활로 구원하셨기에, 우리는 그분의 약속에 마음을 닻처럼 단단히 묶고 살아갑니다. 이 희망은 우리 삶의 진정한 지평을 가리킵니다. “새 하늘과 새 땅”(2베드 3,13)을 향해 우리를 이끌며, 그곳이야말로 우리의 참된 본향입니다(필리 3,20 참조). 하느님의 도성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안에서, 작지만 확실한 표지들을 통해 미리 드러나야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태어난 희망은 인간의 마음을 기름진 밭으로 바꾸어, 세상을 향한 사랑이 싹트게 합니다. 믿음, 희망, 사랑. 이 세 가지 신덕(信德)은 서로 깊이 얽혀 있습니다. 희망은 믿음에서 태어나고, 사랑의 힘으로 자라납니다. 오늘날, 우리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랑은 약속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실현되어야 할 현실입니다. 사랑이 없는 이는 믿음도 희망도 없을 뿐 아니라, 다른 이의 희망마저 앗아갑니다.

 

희망은 단순한 영적 감정이 아니라, 역사 속 책임을 요구합니다. 사랑은 교회가 선포하는 위대한 사회적 계명입니다(가톨릭 교리서 1889항). 가난은 구조적 원인을 지니며, 우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삶의 자리에서 희망의 표지를 계속 세워가야 합니다. 병원과 학교, 가정형 보호소, 위기 아동 공동체, 급식소, 쉼터, 상담소, 초등 교육기관 등, 작고 소박하지만 확실한 희망의 표지가 오늘날 우리 곁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이러한 표지들은 무관심을 이겨내고 사랑의 실천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가난한 이는 교회의 부수적인 존재가 아니라, 가장 소중한 형제자매입니다. 그들은 복음의 진리를 드러내는 살아있는 거울입니다. 그래서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은, 우리 공동체에게 가난한 이들이 사목적 돌봄의 중심에 있음을 일깨워주는 날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가난을 친히 지니시며, 그들의 목소리와 삶, 얼굴을 통해 우리를 풍요롭게 하십니다. 모든 형태의 가난은 복음을 살아내라는 하느님의 초대입니다.

 

희년의 은총은, 가난한 이들을 향한 교회의 사랑 안에서 꽃피워야 합니다.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이 이 은혜의 해의 마지막에 자리잡은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성문이 닫힐 때, 우리는 이 한 해 동안 받았던 모든 은총을 지키고 전해야 합니다. 가난한 이들은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복음의 삶을 새롭게 창조하게 하는 주체입니다. 새로운 가난이 끊임없이 나타나는 시대에, 우리는 무뎌지고 익숙해질 위험 속에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가난하거나 가난해진 이들을 만납니다. 우리 자신도, 예기치 않게 집이나 음식, 의료, 교육, 표현의 자유를 잃을 수 있습니다. 공동선을 향한 사회적 책임은 하느님의 창조 안에서 비롯되며, 모든 재화는 모든 이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합니다. “굶주린 이에게 빵을 준다면, 그것도 좋지만, 아무도 굶주리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더 좋습니다. 옷을 벗은 이를 입힌다면 좋지만, 모두가 옷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더 좋겠습니까?” (요한 1서 주해 VIII, 5)

 

저는 이번 희년이 새로운 빈곤을 해소하고, 가장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책과 노력이 자리 잡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일자리, 교육, 주거, 건강은 무기보다 강한 안전의 토대입니다. 국제 사회와 수많은 선의의 사람들이 이미 실천하고 있는 여러 노력들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위로자이신 성모 마리아께 자신을 맡기며, <테 데움>의 고백으로 희망의 노래를 함께 올립시다.

 

“주님, 당신을 믿나이다.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소서.”

 

2025년 6월 13일, 가난한 이들의 수호자, 성 안토니오 축일에 

 

교황 레오 14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