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저희가 평화의 모후 성모님의 전구로 언제나 주님의 말씀을 따르고, 찬미와 평화 안에 머물게 하소서.”


✝️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요한 20,24-29)

“주님, 의심으로 닫아 둔 제 마음의 문을 열고 지금 이 순간에 머물러,

토마스처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하고 고백하게 하소서.”

 

평화의 모후께 드리는 저녁 시작 기도

은총이 가득하신 성모 마리아님,

평화의 어머니이신 당신께 경배와 찬미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그리고 사랑스러운 어린이 마리나 여러분, 모두에게 따뜻한 인사를 전합니다. 평화의 메주고리예 라디오 방송을 듣고 계신 모든 청취자 여러분께도 평화와 은총이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이 거룩하고 축복된 땅, 메주고리예와 이곳을 찾는 모든 신자들, 그리고 전 세계 평화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무한하신 사랑으로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곳 메주고리예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평화의 어머니를 통해 온 세상에 흘러넘치고 있음을 믿습니다.

은총의 자리인 이곳에 모여 하늘의 음성을 듣고, 하늘이 우리를 부르며, 하늘이 우리를 변화시키고자 하심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평화와 사랑의 증인이 되도록 우리를 새롭게 하소서. 이 은혜와 선물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은총이 충만하신 그분, 곧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시며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기뻐합니다.

오늘도 기쁨으로 그분과 함께 기도하며, 그분의 어머니 같은 사랑과 전구가 우리를 도와 주님께 가는 길을 준비하게 하소서. 그분의 청정한 마음 안에 품으시고 이 세상에 주신 구세주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 주소서. 이 은혜롭고 거룩한 밤에, 우리 모두를 위해 간절히 기도합니다.

또한 오늘 우리의 기도를 부탁드리는 모든 이들을 위해 간구합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평화가 그들과 함께하시길 빕니다. 아멘.

✝️ 성모님 메시지

(2026년 6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내가 너희와 함께 있도록 허락하셨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분께
너희를 이끌기 위해서다.

기뻐하여라, 자녀들아.
어려움 안에서도 기뻐하여라.

너희는 잠시 머물다 가는 존재임을 알고
모든 것을 하느님께 봉헌하면 힘을 얻을 것이다.

잊지 마라.
나는 너희의 어머니이며
너희를 사랑한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미사 강론

부활하신 주님께서 닫힌 문을 지나 의심하는 토마스에게 오시어, 보지 않고도 믿는 행복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요한 20,24-29

2026년 07월 03일  ·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상한 신뢰를 낫게 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 만난 자리에 토마스는 없었습니다. 예수님 오셨을 때 제자들은 뵈었지만 토마스는 거기 없었지요.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는 첫 말씀도, 그 기쁨도 누리지 못했지요. 그때 하신 그 말씀도 듣지 못했습니다. "성령을 받아라" 하신 말씀도 못 들었지요. 토마스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성경은 말합니다. "함께 있지 않았다." 어디 있었는지 몰라도 없었던 건 분명하죠. 그 체험을 놓친 것이지요. 함께 있지 않았다, 그 자리에 없었다.

최후 만찬 때도 비슷했지요. 유다는 있었지요. 몸은 거기 있었지만 마음은 아니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있지 않았죠. 몸도 마음도 거기 없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각자의 삶을 깊이 건드립니다. 바로 내 이야기입니다. "함께 있지 않았다" — 나는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여기 있습니까? 여기 앉아 있어도 마음은 딴 데 있지요. 말씀에도 이 순간에도 머물지 못합니다. 생각은 딴 곳에, 걱정 속에 가 있고 두려움이나 죄책감에 붙들리면 그것만 보입니다. 말씀도 들리지 않고 하느님의 따뜻함도 느끼지 못합니다. 이 바람조차도요.

악은 언제나 우리를 지금 이 순간에서 떼어 놓습니다. 어떤 악이든 그래요. 죄만이 아니라 걱정과 두려움, 지나친 생각, 죄책감 같은 것들이 우리를 이웃에게서, 지금 여기에서 갈라놓습니다. 딴 데로요. 주님은 우리를 여기로, 자, 지금 이 순간, 이때로. 지금뿐입니다. 삶은 지금 일어나고 지금 흘러갑니다, 우릴 거쳐서 말이죠.

거기 없었다. 제자들은 외쳤죠. "주님을 뵈었소!" 기쁨에 넘쳐 말한 것이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기쁨에 차서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살아 계셔!" 하고 가족과 지인들에게 달려가 전하지요. "놀라운 하느님 사랑을 체험했어요!" "주님이 내 삶에 손을 대셨어요." "죄를 용서받았어요." 그 기쁨을 전한 겁니다. 기쁨에 찬 환호였습니다. "내 삶에 들어오셨다!" 죄책감을 벗겨 주시고 눈을 열어 주셨다! 나를 자유롭게 하시고 내 마음을 성령으로 채우셨다! 이 놀라운 일은 우리 이야기이기도 하죠. "주님을 뵈었소!"

그런데 토마스는 믿지 않습니다. 토마스는 이런 분들 같습니다. "메주고리예에서 성모님 계심을 체험했어요."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만났어요." 해도 듣기는 하겠지만 마음속으로는 믿지 않습니다. 믿지 않아요. 살아 있는 체험, 하느님 체험을 하고서 기쁨에 차 가족에게 달려가 전해도 믿어 주지 않지요. 토마스도 말합니다. "나는 믿지 않겠소." "못 믿겠다"가 아니라 "안 믿겠다"입니다.

이건 참 아픈 경험이지요. 아름다운 체험을 나누고 싶을 때, 사랑하는 이들과 나누려 할 때 특히요. 가까울수록 기쁜 체험을 나눕니다. 신앙 안에서, 메주고리예에서 겪은 일. 어느 은총의 자리에서든 기쁨을 나눴는데 닫힌 마음과 불신뿐이라면, 얼마나 아픕니까? 소중한 것을 줘서는 안 될 곳에 준 것 같지요. 이해받지 못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내가 겪은 그대로 봐 주지 않는다는 아픔이죠. 제자들도 그랬을 겁니다. "토마스, 우리가 뵈었소!" "체험했다오!" "아름다웠소!" 그 대답에 얼마나 아팠을까요. 그 기쁨을 못 나눴죠.

우리도 이런 일을 겪지요. 교회 밖 아닌 교회 안에서요. 같은 신앙, 같은 말씀을 나누고 제대 위에서 같은 성체를 모십니다. 같은 신앙, 다른 마음. 속내가 다른 거죠. 얼마나 아픕니까, 마땅히 하나여야 할 신앙의 일에서조차 하나 되지 못할 때 말입니다. 그 불화와 불신이 우리 안에 번지는 것을 봅니다. 토마스의 불신이 공동체 안에 있죠. 그래서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합니다. 제 힘만으로는 눈을 떠 믿을 수 없기에요. 하느님의 손길, 그것이 우리를 구하죠. 교회도 세상도 모두 구합니다. 약함을 돕는 은총이죠.

중요한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제자들은 토마스를 믿음이 흔들린다고 해서 내치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엄청난 것을 믿지 못했는데도 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하느님의 현존과 그 힘을요. 그래도 그를 받아들였죠. 보십시오, 교회의 이 넓은 품을요. 질문도, 의심도, 심지어 불신마저 품어 주는 넓이입니다. 믿음에 문제가 있어도 머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온전히 믿는다" 할 이, 있습니까? 마음 다해, 바라며 그리로 갈 수는 있지요. 우리 믿음은 자라다 넘어지고, 흔들리다 다시 일어서곤 합니다. 토마스가 얼마나 가깝습니까? 그의 문제가 곧 내 믿음의 문제지요.

토마스는 조건을 겁니다. "보지 않고는, 넣어 보지 않고는 안 믿겠소." 믿을 조건을 정한 거죠. 질문 하나 드립니다. 지금 종이에 적어 본다면요. 지금 내 처지에서, 하느님도 성모님도 못 하신다 여기는 그 일에서 내 조건을 두세 줄 적는다면요. 나는 언제 믿겠는가? 토마스와 닮은 걸 보게 되죠. "보기 전엔 못 믿겠소." 눈으로 봐야, 확인하기 전까지는요. 증거를 찾습니다. 우리가 그렇지요. 토마스 같죠. 나쁜 것만은 아녜요. 보이는 것에 기대는 게 사람이니까요. 만지고 잡히는 것에 매이죠. 주님은 한 걸음 더 청하십니다. 보이지 않는 것에도 기대라고요. 못 만져도요. 그분께. 비록 서로를 만지듯 손으로 못 만져도 믿음을 청하십니다.

자, 여드레 뒤 예수님이 오십니다. 문은 닫혀, 닫힌 문은 언제나 닫힌 마음의 표상이죠. 불신하는. 누군가를 못 믿을 때 그 마음은 닫히죠. 주님은 그 닫힌 마음, 닫힌 공간으로 들어오십니다. 한가운데. 믿음과 불신이 갈리는 그곳에요. 신뢰와 불신, 존재의 중심이죠. 삶의 중심 문제입니다. 삶의 중심은 신뢰에 달려 있습니다. 믿는 이들 곁이면 평안하고요. 못 믿을 이들 곁이거나 신뢰가 상처 입었다면 깊은 곳이 아픈 것이죠. 사람도, 사제도, 교회도 못 믿는다면, 성사도 말씀도 못 믿는다면 깊이 상한 겁니다. 하느님마저 못 믿는다면요. 주님은 바로 그리 오십니다. 상한 신뢰가 있는 곳으로요. 그 상한 신뢰, 누가 고칩니까? 하느님 은총이죠. 마음이 열려야 합니다. "마음을 열자," 자주 듣는 이 말은 곧 신뢰를 되살려 마음이 낫는다는 뜻입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시고 곧장 토마스께 가십니다. 그 자리에 아니 계셨어도 주님은 다 들으셨습니다. 토마스 눈엔 안 보였지만 그의 말을 듣고 계셨죠. 그가 내건 조건까지도요. 주님은 그렇게 내 불신도, 부서진 신뢰도 다 들으십니다. 상한 관계와 아픔도 보고 계시죠. 가장 깊이 보시고 고치려 하십니다. 토마스의 상한 마음까지도요. 그래서 "손가락을 대 보아라" 하시죠. "네 조건에 맞춰 주마." 생각해 보세요. 그 누구도 감히 조건을 달 수 없는 무한하신 하느님께서 토마스의 조건에 맞추십니다. 왜요? 고쳐 주시려는 겁니다. 인간의 조건에 매이지 않는 분께서 기꺼이 자유로이 토마스에게 맞춰 주신 거죠. 그 마음에 들어가시려고요. 오직 사랑 때문입니다.

화가 카라바조의 ‘의심하는 토마스’를 한번 찾아보십시오. 토마스가 정말 손가락을 넣어 보는 모습이 그림에 담겨 있습니다. 주님이 이끄시죠. 성경엔 없지만 화가는 그리 그렸습니다. 토마스가 주님 상처에 손을 대며, 찔리신 옆구리에요, 다른 손으론 제 가슴을 붙들고 있죠. 화가의 강렬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참으로 주님을 만나는 순간, 하느님 사랑에 닿아 그 사랑을 겪으면 온 존재의 중심이 움직이고 마음이 낫죠. 상한 신뢰를 낫게 하는 건 사랑입니다. 아무 사랑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이죠. 메주고리예에서 성모님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는 하느님 사랑입니다. 성모님의 모성애는 곧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 당신이 받으신 그 사랑을 우리에게 전해 주시어 우릴 고치시죠.

말씀에 더 깊이 다가가면서 이제 마무리로 나아가 보겠습니다. 말씀을 더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 삶의 깊은 실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지고 사는 상처들이지요. 그 상처를 고치시려는 하느님의 자비도 말합니다. 헌데 문제가 있죠. 상처와 외로움, 부서짐과 실망, 허무함을 우리는 엉뚱한 데서 고치려 한다는 겁니다. 못 얻을 곳에서요. 술이나 약물, 사람이나 그 무엇에 대한 집착으로 채우고 고치려 하지만 그 길은 언제나 탐욕으로 이어집니다. 왜죠? 우리 상처는 더 큰 것을, 그 아픔은 무한한 사랑을 찾기 때문입니다. 잠시 위안은 얻죠. 중독을 겪어 본 분은 누구나 압니다. 찾은 건 평안, 아픔에서 낫고 싶었던 거죠. 위로를 찾았죠. 그런데 왜 해도 해도 모자랄까요? 무엇이든요. 돈이든, 쾌락이든. 왜 탐욕이 되죠? 상처만 더 벌어지고 또 매달리니까요. 악순환이 되는 거죠. 그 죄와 도피 속에서 찾아 헤매던 사랑, 하느님이 오시기까지요. 이것이 우리 이야기, 믿음의 이야기입니다.

누가 이 비참에서 우리를 구해 냅니까? 여기 우리가 새겨야 할 토마스의 고백, 우리를 살리는 그 한마디입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아멘. 찬미 예수님, 마리아. 

신자들의 기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영원히 살아 계신 주님께 다 함께 기도드리나이다.
주님,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 · ·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워진 교회가
거룩한 삶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드러내게 하소서.

· · ·

교황 레오 성하와 주교들,
당신 봉사직에 부르신 사제와 부제들이
모든 이에게 구원의 증인이 되게 하소서.

· · ·

의심과 유혹으로 당신 진리에서
멀어져 괴로워하는 이들이
아버지의 자비로운 빛을 보게 하소서.

· · ·

발견으로 지식의 보고를 넓히는
오늘날의 과학자들이
진리와 그 안의 선을 따르게 하소서.

· · ·

구원의 거룩한 신비를 경축하는
이 공동체의 저희 모두가
토마스처럼 주님을 고백하게 하소서.

· · ·

세상을 떠난 이들이 주님의 부활로
삼위일체의 친교에 들게 하소서.

· · ·

부활하신 주 예수님,
사도 토마스의 고백 뒤에
보지 않고도 믿는 이들을 복되다 하셨으니
토마스의 전구로 저희 믿음을 길러 주시고
영원한 복락에 들게 하소서. 아멘.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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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 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 2026.04.06 9714
공지 ✝️ 주님 부활 대축일 - 낮 미사 2026.04.05 9570
공지 ✝️ 주님 부활 대축일 - 파스카 성야 2026.04.04 9425
공지 ✝️ 성주간 금요일 2026.04.03 9258
공지 ✝️ 성주간 목요일 2026.04.02 9461
공지 ✝️ 성주간 수요일 2026.04.01 9663
공지 작은 이를 섬기는 손 진실을 말하는 용기를 주소서 2026.03.27 9668
공지 지혜의 옥좌이신 성모님 강생의 진리 안에서 평화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2026.03.25 9718
공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2026.03.22 10338
공지 메주고리예 국제 청년 대회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2019.07.06 16068